제목 | 반영억 신부님_비교에서 악이 나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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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08 | 조회수11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의 몫을 행하고 또 그 몫에 기쁨과 감사함을 지닙니다. 자기 몫이 무엇인지 알고 확신이 서 있다면 그 몫을 행하는 것에 배 아플 일 없고, 기쁨이 클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몫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었고,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르타가 마음이 상했는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 데도 보고 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루카10,40).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마르타의 몫도, 마리아의 몫도 다 필요하고 좋은 몫입니다. 활동과 관상은 자기의 취향에 따라 더 크게 비중을 두었다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마르타의 태도, 편견이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꾸중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리아에게도 그녀가 필요한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마리아가 선택한 것은 좋은 몫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마리아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10,17). 말씀을 기초로 삼지 않은 행동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깨닫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내 뜻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는 것을 찾게 됩니다. 진정 하느님 앞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르타는 다소 불평스러운 어조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역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생색은 왜 냅니까? 왜 동생과 비교합니까? 열심히 일해 놓고 마음에는 화를 잔뜩 담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내 몫이었으면 그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스스로 주님을 위해 시중을 들었으면, 그 자체를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마르타는 활동적인 여인인 듯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에만 집착하면, 그 활동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활동은 기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나온 활동이라야 참된 활동이 됩니다. 또한, 기도를 하면 할수록 활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없는 활동은 무의미합니다. 활동이 없는 기도는 또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안에서 좋은 몫을 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몫이라도 최선을 다했으면 그 자체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12,31).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뒤로 미루고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친구를 따라 강남을 가지 말고, 자기 몫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남을 따라가다 보면 불평불만이 생기게 되고, 결국, 악에 지고 맙니다. 지금 하는 일이 좋은 몫이라면 마음껏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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