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주간 복음을 이해하고 심화하기 위해서 그 주일 복음과 연결해서 바라보고 살아가는 영성적인 습관이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번 주일 복음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을 받아들임, 월요일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 는 말씀에 담긴 사랑으로 살아감, 그리고 화요일엔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주님 앞에 멈춤과 들음, 수요일은 참 기도에 대한 가르침, 오늘 복음에선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랑의 삶과 기도 생활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 영성 생활의 바탕이며 초석입니다. 기도와 사랑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며 이는 곧 예수님의 존재였고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려는 그리스도인 우리에게 이런 영성의 단련이 필요합니다. 비록 작지만 작지 않은 주님께 대한 믿음에서 사랑의 실행이 나오고 그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의 답이며 열쇠인 주님과 인격적이며 사랑의 관계인 기도가 그 원천이며 바탕이라는 점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에 우리를 참여하도록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당신과 함께 아빠 하느님께로 우리를 이끌고,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힘을 주시고 그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영적 양식 포함)을 주시며 아버지의 자녀로서 서로 용서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선, 아버지의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계신 아빠 하느님은 우리의 청함을 즐겨하시고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 까닭은 바로 우리의 청함은 단지 어떤 그 무엇을 청하는 것만이 아닌 바로 아빠 하느님을 아빠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아빠 하느님의 마음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11,9.1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우리의 청함과 찾음과 두드림을 기다리시는 아빠 하느님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의 비유”(11,5~8)를 통해서 간절하게, 끈질기게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기도하는 이에게 아빠 하느님은 참지 못하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는 표현에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아빠 하느님에 대한 확신이며 이런 확신에서 우리가 아빠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바라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고마운 말씀입니까?
이렇게 우리가 말(=청함)과 몸(=찾음)과 그리고 가슴(=두드림)으로 아빠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할 때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고, 이 변화가 우리로 하여금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아빠 하느님께 간구해 주심’을”(로8,27참조)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아빠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11,13)하고 예수님께서는 아빠의 참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세상적인 어떤 그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좋은 것”(마태7,11) 곧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실 성령은 바로 예수님의 강생에서 부활의 여정 가운데서 함께 하셨던 영이며, 그 영은 바로 아버지의 영이며, 그 영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아빠이시며, 그 영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참으로 알게 되어 예수님을 주님이시다, 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하느님, 저희에게 사라지고 마는 세상적인 어떤 그 무엇보다도 당신께서 주시길 바라시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