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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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10-14 | 조회수7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보면 이 사람들이 믿을까요? 표징이라는 낱말을 보면서 몇몇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12,37). 사람들은 표징을 청하지만, 표징을 보고서도 믿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표징이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오히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표징을 청하라고 하시지만 그는 청하지 않습니다(7,10-12 참조). 그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표징이 주어지면 그 표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여야 하기에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험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표징이 없을 때는 자신의 불신을 감추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시]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표징을 청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라는 하나의 표징이 던져졌고, 이 표징 앞에서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쩌면 그 세대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았던 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른 세대입니다. 이날 저 날 미룰 수도 없이,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표징은 주어져 있습니다. 그 표징은 나의 믿음을 확인시켜 줍니까, 아니면 나의 불신을 드러나게 합니까?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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