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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이비: 거짓말이 만드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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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14 조회수189 추천수2 반대(1)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사이비: 거짓말이 만드는 인간> 

 

 

 

 복음: 루카 11,29-32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다고 하십니다. 왜 표징만 요구하는 이들이 악할까요? 저도 사제가 되라고 불러주실 때 예수님이 나타나시든가 하는 표징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때 새벽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상에서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술 취해서 헛것을 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려왔습니다. 이때 느꼈던 게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그 이유를 표징이 없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표징까지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행복’이라는 모토로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 결혼을 생각했다가 이제 ‘하.사.시.’를 읽고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더 큰 행복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표징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행복으로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마음에 저절로 지적인 호기심이 누구보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해지려는 이는 그 방법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던 중 ‘하.사.시.’를 만나게 되었고 참 행복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참 행복의 지혜가 표징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로 완벽히 결심하게 만든 책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었습니다. 주님은 표징보다는 참 행복의 길로 이끄는 방법으로 지혜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표징만 요구한다면 그 마음 안에는 믿지 않는 합리화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표징으로는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지혜가 오히려 마음을 바꿉니다. 사실 표징은 내가 지혜로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을 때 나중에 보여주십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예수님 시대에 하느님을 믿던 이들도 다 신앙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다가오기는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사실 지혜가 예수님께로 이끄는데 말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니네베 사람과 남방 여왕의 예를 듭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표징이 아닌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고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그분에게 표징을 요구한다는 말 자체가 그분을 믿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들을 ‘사이비’라 합니다.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신앙인 같지만, 실제로는 주님 뜻을 따를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이비를 만드는 이들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이들은 지혜를 원치 않는 이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거짓말’에 있습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할 때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지혜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신천지는 어떻습니까? 포교를 하는데 거짓말을 정당화합니다. 열매가 방법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TV 뉴스도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정보의 유입이 얼마나 큰 해를 입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합니다. 거기에는 마치 표징과 같은 놀라움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필요한 부분만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짜 맞춰서 가르치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속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 지혜를 찾기를 원치 않는 사이비에 적합 화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는 모든 사이비들에게 적용됩니다. 광주 대교구 최창무 주교님이 나주 율리아의 모든 것들이 거짓된 것임을 교령으로 반포하셨습니다. 나주 율리아를 제가 처음 접했을 땐 저도 매우 신기했었습니다. 성체가 입 안에서 피로 변하였다가 다시 성체로 변하는 모습 등을 비디오를 통해 보았을 땐 정말 믿음이 더 깊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차차 하늘에서 성체가 떨어진 것은 자신이 쥐고 있던 제병을 던진 것이라는 증언과 자료를 보고 또 입에서 성체가 피로 변하는 것은 입 안에 나 있는 상처를 터뜨려 피가 나오게 했다는 것을 들었고,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것도 그녀가 묵고 간 곳에서 향수병이 발견됨으로써 거짓이었다는 것 등을 듣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특히나 그녀가 미장원을 할 때부터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또 그녀의 오줌을 사람들이 나누어 마시는 것 등을 보았을 때는 그런 것들에 광신적으로 빠져있는 신자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이비에는 항상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수원 교구에서도 최덕기 주교님께서 미리내 상주 데레사의 모든 것들도 거짓임을 교령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도 수녀님들에 의해 그 계시 받아 그린 그림들을 보고 글을 읽어보며 신기해했었습니다. 역시나 그런 것들로 믿음이 커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배우며 그때 보았던 많은 것들이 신학적으로 오류가 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들이 마귀에게 속았거나 거짓으로 꾸며 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리내 중앙에 있는 삼위일체상도 계시를 통해 보고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간단히만 말하면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양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은 신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을 지으신 분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고 있다는 뜻인데 하느님께서 무엇에 제약받으신다면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닙니다. 또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영(靈)이시고 (요한 4,24)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본 이가 없다고 하고 (요한 1,18: 6,46) 교회의 가르침도 아버지는 볼 수 없는 분이라고 가르치는데 아버지를 보았다고 한다면 스스로 그리스도와 동급이 되려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는 사이비가 점점 강하게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지혜가 아닌 표징만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표징만 요구하는 세대가 된 이유는 거짓말을 허용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도 바로 그러한 세계관을 가집니다. 사이비 새진리회는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 맞서는 이들은 지혜로 하나하나 설명하려 듭니다. 둘은 적대관계가 되어 서로 싸웁니다. 


    제가 오랜만에 본당에 왔을 때 정말 놀랐던 것은 성경, 그리고 기도서나 성가책을 제외하고는 성물방에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게 된 이유는 당시 성물방 책장에는 엄청난 책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게 되고 지혜를 찾지 않게 된 이 세상은 이제 사이비가 만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말합니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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