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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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16 | 조회수6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공부하면 저도 할만큼 했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많이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여서 지금의 어려운 형국입니다. 논문 보다는 특허는 잘 합니다. 이것으로 특허가 되겠어? 해도 발명의 구성 요소를 잘 조합해서 특허를 잘 만들어 놓는 사람이 저입니다. 특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잘 만들어서 좋은 특허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특허 중에 잘 나가는 특허라고 해 봐야 인용 지수가 10을 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100에 가까이 되는 특허가 있습니다. 그것도 미국 특허로 등록된 특허인데 인용지수가 100에 가까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대와 인문게 사람들의 경향성이 달라서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성당안에서 공부 했다고 하는 분들?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분들을 보면? 글쎄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일까? 영성의 대가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학문은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충분은 한데 그런데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구원의 필요 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성으로 넘어가는 분들의 영적인 삶의 여정을 보면 학위 보다는 하느님만 바라보면서 완전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학문을 집대성하거나 혹은 율법을 집대성하신 분 같지는 안습니다. 율법보다 더 원천적인 것, 하느님의 사랑안으로 들어가신 분입니다. 온 몸으로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신학교 과정의 눈물 겨운 시절을 신부님들이 이야기하실때면 참 눈에서 눈물이 바로 나오실 것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100명을 만나 보면 100명 모두 힘든 신학교 공부를 말씀하십니다. 참 어려운가 봅니다..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해 모르지만 ..100명을 만나면 100명 모두 그 당시 치열하게 공부한 것을 기억하면서 아주 혹독한 시간이었구나라는 것을 추정 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이불 속에서 준비하신다는 말을 듣고 ... 공대와 사뭇 다르구나입니다. 저는 만약 집에서 경제적으로 지원만 되었고 시간만 제공하였다면 이까짓것 하면서 공부하였을 텐데..그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는 분들의 경우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공부가 빛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완덕에 이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완덕에 이르셨고 또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완덕에 이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주님으로 부터 많이 질책을 받습니다.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신학 공부 혹은 율법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은 완덕에 이르는 길입니다. 성화가 최종 목적입니다.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어렵게 공부하신 신부님들에게 미안하지만 신학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은 디딤돌과 같은 것입니다. 딛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완덕으로 넘어가는 여정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내것을 희생해서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것..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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