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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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0-16 | 조회수156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루카 11,42-46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태에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마음 속에 두려움이 각인된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어머니와 완전히 일치되어 있을 때에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다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아기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내쳐지거나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을 강하게 가진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는 행동을 끊임없이 합니다. '본래의 자기모습'을 찾으려고 하지않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만 집중적으로 계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진정한 나'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게 벌어져서 '진짜 나'의 모습은 완전히 잃어버린 체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인 척 하며 사는 사람은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홍윤숙 시인은 "가면"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썼지요.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마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문다 / 부질없는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짓는다 / 수치와 굴욕을 감추기 위해 큰소리로 떠든다 / 그러다 돌아와 자신을 향해 침을 뱉는다 눈물을 쏟는다 / 무거웠던 가면 전흔의 상처 남루한 / 또 하나의 얼굴이 쓸쓸히 누워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십니다.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무덤'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품고 살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하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위선은 바로 그들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잘 익은 벼가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제대로 이해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진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하느님께서 그런 자신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를 잘 알기에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에서는 그런 겸손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호랑이의 권세를 등에 업고 거드름을 피우는 여우의 모습처럼, 그들은 하느님을 등에 업고는 자신을 드높이고 빛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거룩한 척, 경건한 척 가면을 쓰고 사는 일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마주서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나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부족함은 채우고 약점은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우심과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이 힘을 내도록 언제나 함께 해 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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