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이웃에게 예수님 증언하는 삶을 / 연중 제28주간 토요일(루카 12,8-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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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18 | 조회수7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이웃에게 예수님 증언하는 삶을 / 연중 제28주간 토요일(루카 12,8-12) 살면서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다른 이들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하지만? 말만 신자이지 예수님과는 정녕 거리가 먼 이는 아닐지?’ 사실 믿는 우리는 자주 만나는 이에게 먼저 주님 증언하는 삶을 살자. 그들에게 풍기는 예수님 향기만이 그들에게 그분을 향해 머무르게 할 것이기에. 무심코 드러내는 말과 행동에서 그분 증언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믿음의 향기’이리라. 그건 신앙생활의 기간과 교회에서 그 어떤 위치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천사들 앞에서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나도 하느님 앞에서 모른다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는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 모독하는 이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란다. 성령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영이다. 하느님 자신이시기에 사랑, 진리, 생명, 평화이신 것이다. 그러니 성령 모독은 곧 하느님 모독으로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증언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게 없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 바로 그 모습으로 필요시에 성령을 보내시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니까. 그리하여 우리가 할 말을 성령을 통해서 다 알려 주실 것이니까. 그러니 신앙생활에서, 세상의 위협에 그리 크게 걱정이 필요 없다. 따라서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는 없을 게다. 그러기에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회개를 거부하는 것이리라. 하느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용서하신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하느님께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성령을 받았고, 그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고백한 신앙을 마음속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고 세상에 용감하게 증언할 수가 있어야만 할 게다. 사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전 삶이 예수님께 속한다는 것일 게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울타리 안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그분과의 인연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리라.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랑이고 그분과의 만남의 조건이리라. 그러니 자신의 내면 전체가 예수님으로 가득 찬 이는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낸다. 그 향기는 세상의 풍파와 박해 속에서도 더욱 진하게 뿜어져 나올 것이고,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마저 바치는 순교의 그 빛나는 영광의 장소까지 계속될 것이다. 특히 신앙의 증언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삶의 결단이 따르지 않고는 불가능하리라. 따라서 내 삶의 방향과 정체성이 온전히 정립되어 있을 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게다. 내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알아서 답을 다 주시기에. 신앙을 일깨우는 증언은 삶 자체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일 때에야 더욱 힘을 발휘하리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믿음을 가진 이라는 확신만 준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을 증언할 게다. 믿음의 증언으로 참된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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