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복음 선포의 삶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양승국 신부님_기회가 좋던지 나쁘던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교합시다! |1|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20 | 조회수116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기도하라, 공부하라, 복음을 전하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오늘은 제98차 전교주일로 우리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담화문 일부를 인용합니다. 주일 담화문의 주제는 “가서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여라”(마태22,9참조)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하느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반드시, 선포되시는 그분의 ‘방식’을 그대로 본받아야만 합니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선포할 때, 그리스도의 선교 제자들은 그들 안에 맺어진 성령의 열매인 기쁨과 인내와 호의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압박이나 강요나 개종의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밀감과 연민과 온유로 그리고 이로써 하느님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을 반영하면서 해야 합니다.”
복음 선포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끊임없이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날로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이때 저절로 복음 선포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삶의 자리가 복음 선포의 자리입니다. 좋으신 주님을 잘 반영할수록 복음 선포는 잘 이뤄질 것입니다. 이어지는 담화문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선교 활동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맙시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매력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삶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의 삶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오로 사도의 제2독서 로마서 말씀중 다음 고백을 그대로 믿으며 복음 선포의 삶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부르는 모든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고백의 기도입니다. 구원해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좋으신 주님을, 꽃다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고백하며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에 이어 ‘공부하라’입니다. 평생기도에 평생공부가 주님을 닮아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무슨 공부입니까? 하느님 공부, 말씀 공부, 평화 공부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참으로 절박한 오늘날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어 우리를 격려합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 삶의 자리가 주님의 말씀을, 진리를 배우고 공부해야할 주님의 산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을 사랑하듯 공부를 사랑하여 하느님 공부, 말씀 공부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을 배워 닮아가는 것입니다. 다음 이사야의 평화의 꿈도 우리의 평화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붇돋웁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참으로 이 말씀이 절박한 오늘날의 시점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이요 너무나 아까운 생명들이 죽어갑니다. 무장하여 싸우는 병사들을 보면 흡사 인간은 실종되고 하나의 흉기로 변한 모습입니다. 참 불행하고 어리석은 무지의 현실이 반복되는 통탄스런 역사입니다. 오늘날보다 주님의 평화가 절실한 시대는 없습니다. 그러니 평화의 모범이 됩시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의 빛 속에, 평화의 빛 속에 걸어가는 삶을 삽시다.
기도하라, 공부하라에 이어 복음을 전하라입니다. 비상한 복음 선포의 삶이 아니라 주님 평화의 일꾼으로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우리의 선교 자세를 바로 갖게 합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은 아름다울수 뿐이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사람의 본질이듯, 말씀 역시 사람의 본질입니다. 마음 깊이에는 진리의 말씀을 목말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우선 나 자신부터 말씀과 하나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우리들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우리의 숨통입니다. 우리의 영적 숨쉬기가 복음 선포의 선교요 선교없는 삶은 존재이유의 상실로 살아있으나 실상 죽은 삶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한결같이, 기도하고,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은 복음 선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