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9주일 나해, 전교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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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0-20 | 조회수10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29주일 나해, 전교주일] 로마 10,9-18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전교주일’입니다. 선교란 아직 하느님 아버지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해 알리는 일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영적 신앙적으로 더 뛰어난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게 선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교에 대한 그런 잘못된 인식이 신앙생활을 먼저, 오랫동안 한 이들로 하여금 새로 신자가 된 이들에게 ‘텃세’를 부리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교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신앙도 깊지 않은 ‘평범한 신자’들은 감히 선교를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선교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왜 실천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선교에 소극적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신앙적 영성적으로 부족한 자신에게는 선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하자고 하면 많은 분들이 ‘나는 말주변이 없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나는 교리에 대한 지식도 없고 영성적으로도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개신교 신자들이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걸 부러워하십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경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지요.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복음을 전할 제자들을 뽑으실 때에도 하느님과 성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부들을 가장 먼저 부르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라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자기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그분께서 정말 부활하신 게 맞는지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들을 볼 때, 선교는 신앙적, 영성적으로 뛰어난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맡겨진 특별한 직무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개신교 신자들을 부러워하며 뒷짐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시간 내서 열심히 읽고 기회될 때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것들도 생기는 겁니다.
다음으로 알아볼 것은 선교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선교할 때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열심히 떠들고 다니면 될까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온 세상 사람들을, 그들이 어떤 문화와 신앙을 갖고 잇는지와 상관없이, 무작정 세례를 받게 하여 억지로 천주교 신자로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에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선교는 여러가지 심각한 부작용들을 초래했지요.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이라면, 우리가 만난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우리가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희망해야 하는지를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해야 할 ‘신앙의 내용’은 교리지식이 다가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주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우리가 전해야 할 신앙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삶 그 자체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하는 그 실천을 통해 ‘기쁨’이라는 신앙의 좋은 향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풍겨야 하는 겁니다. 길을 가다가 좋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아직 신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가 내뿜는 신앙의 향기에 이끌려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번째로 알아볼 것은 선교의 방법입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인 로마서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선교는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발로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곳곳을 돌아다니시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과 슬픔 속에 신음하는 이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함께 어울리시면서 그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아픔에 공감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선교해야 합니다. 친구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내주어야 합니다. 이해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해하며, 사랑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화려한 꽃이 되어 자기를 뽐내며 남들을 주눅들게 하기보다 어두운 땅 속에서 물과 양분을 찾아 줄기에 전달해주는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물과 거름을 주는 건 자신이지만, 그들이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생각하며, 겸손과 사랑으로 그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처럼 삶으로 선교하는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눈에 보이는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는 오직 이 길만을 우직하게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선교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선교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선교를 계속 해 나갈 원동력이자 의지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그저 그것이 주님께서 맡기신 의무라서,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선교를 통해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을 믿고 그분 뜻을 받아들여 따르게 되면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하느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기에 해야 하는 겁니다. 즉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 속을 걸어가며 그분 뜻을 충실히 따르게 되면,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나 갈등이 생기는 일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선교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이니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선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맺어야 할 신앙생활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도 단 한 명도 신앙의 길로 인도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도인다운 충실한 생활로 남들이 나를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이끌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인도한 그 사람이 세례를 받았는가 아닌가 하는 결과나 실적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실적이 아니라 정성과 노력을 보십니다. 우리는 선교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에,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기에, 선교해야 하는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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