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루카 12,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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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23 | 조회수11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0/23) :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 제1독서 : 에페 3,2-12
* 복음 : 루카 12, 39-48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도 종말에 관한 비유인 앞 장면의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에 이어, “집주인과 도적의 비유”와 “청지기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앞의 것은 어제 복음과 함께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이라는 ‘깨어있는 종들’에 대한 행복선언이라면, 뒤의 것은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들”(루카 12,43)이라는 ‘깨어 일하고 있는 종들’에 대한 행복선언입니다.
이는 ‘깨어있는 자’는 단지 잠들지 않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일하는 자’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깨어있으려면, 먼저 ‘대체 무엇이 맡겨졌고’, ‘무슨 일이 맡겨졌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할 일입니다. 곧 ‘청지기’(집사)가 가져야 할 태도와 방식을 가르쳐주십니다. 우선 비유에서,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하여 종들과 양식과 재물을 돌보는 직무를 맡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루카 12,42)
이는 먼저 제자들에게 다른 어떤 일이 아니라, ‘주인의 종들이 맡겨졌고’, ‘그들에게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고 돌보는 일’이 맡겨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바로 이 ‘사실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할 일입니다. 곧 ‘나에게 맡겨진 종은 나의 종이 아니라 그분의 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구 부려 먹으라고 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양식을 내주라고 맡겨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양식은 이미 정해져 주어졌고, 그것을 때에 맞추어 소홀함이 없이 잘 챙겨내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충실함’은 하느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며 그 약속에 ‘신실하심’(헤세드)과 ‘한결같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곧 당신 종들을 끝까지 챙기시는 ‘충실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당신의 이 마음을 ‘청지기가 지녀야 될 태도’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은 ‘슬기로움’으로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슬기로움’이란 맡겨진 이들을 다루는 기술이나 요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어주는”(루카 12,42) 일입니다. <잠언>에서는 말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잠언 9,10)
그렇습니다. 지혜는 주님을 알고, 두려워하고, 믿는 마음에서 옵니다. 그것은 “주인의 뜻을 아는 지혜”를 넘어, “주인의 뜻에 따라 사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시편> 작가는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친 사람이다.”(시 111.10)
그렇습니다. ‘지혜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곧 주인의 뜻을 알고 그것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요,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이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루카 12,42) 주님! 먼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저는 주인이 아니라 당신께 속해 있는 자인 까닭입니다. 하오니, 무엇을 하든 제 방식이 아니라 당신의 방식을 따르고,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따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관리인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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