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정주(定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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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23 | 조회수14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종신불퇴(終身不退)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읽은 뉴스의 두 제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와 대화의 건설자’(a builder of peace and dialogue)였다.” “시노드는 멕시코에서 살해된 ‘평화의 전사’(warrior of peace)인 사제를 위해 기도하다.”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모름지기 공동체 지도자는 평화와 대화의 건설자로, 또 평화의 전사로 책임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 금정산의 범어사를 찾는 모 정치지도자에게 주지스님과 방장스님이 선물했다는 액자의 글귀가 마음에 와닿아 나눕니다.
“무구무애(無垢無碍,인생을 살면서 허물이 없어 걸릴 것이 없다)” “감인대(堪忍待,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이 또한 책임을 다하는 자들이 마음에 담아야 할 교훈입니다. 어제는 매월 갖는 수도원을 사랑하는 모임은 예수성심자매회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매들입니다. 미사를 봉헌하고자 피정집을 향하는 순간 떠오른 말마디를 “늘 깨어 있어라!” 강론에 추가했습니다. 어제 강론은 너무 강열해 제가 쓴 강론이지만 잊지 못합니다.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참 중요한 말마디를 잊은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열려 있는 사람이요 벽이 아니라 문인 사람입니다. 주변에 환히 활짝 열려 있는 빛같은 사람이 진정 깨어 있는 자유로운 사람, 욕심없는 사람, 질투나 분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을 때 죄도 짓지 않습니다. 깨어 있음을 잊을 때 죄도 짓기 마련입니다.
예수성심자매회가 설립된지도 거의 20년이 됩니다. 수도원이 곤경중에 있을 때 시작된 자매회요 이때부터 20년간 총무와 회장 책임을 다한 자매의 진솔한 고백을 잊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 공동체를 추스르기에 많이많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젊음이 이제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고 있는 분입니다. 새삼 감동한 것이 자매님의 책임감입니다.
20여년간 참으로 성실히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했습니다. 추상적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 사랑이 감동을 주고 이런 책임을 다할 때 구원이라 믿습니다. 말없이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삶에 옛 어른의 말씀도 도움이 됩니다.
“말이 많아지면 어느새 쌓인 말들이 행동을 앞서게 된다.”<다산> “말이 많으면 빨리 궁해지니 차라리 속을 비워 지키느니만 못하다.”<도덕경>
36년전 수도원 초창기 수도원에 부임할 때 회상하며 쓴 글을 약간 손질하여 나눕니다. 이때의 결의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평생 믿음의 정주에 힘을 다하게 하는 다짐이 됩니다.
“본원에서 파견받아 떠나기 전날 밤, 밤새워 성전에서 주님께 3천배 절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살아왔네 성철 큰스님의 ‘종신불퇴’말씀을 좌우명 삼아 평생 매일 미사와 강론에 배수진을 치고 살아왔네 지금까지 만36년 동안 하루만 살았네. 나에겐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가 영원이라네.”
평생 정주 서원은 죽을 때까지 그 삶의 자리에서 종신불퇴의 자세로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주님 향한 신망애의 자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진인사대천명’,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한다’, ‘백절불굴, 칠전팔기’,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말마디를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책임을 다하는 순교자적 삶의 자세를 지칭하는 말마디들입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사회 각층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믿는 자들 모두에게 좋은 참고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도자들을 모름지기 깨어 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집사의 직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도자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책임은 특권(privilege)이 아니라 봉사직(service)이요, 시험(test)이자 신뢰(trust)의 문제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평생 쌓은 명예와 신뢰도 무너지기는 순간이요, 실추되 명예와 신뢰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며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경우는 거의 치명적입니다. 더불어 공선사후(公先私後,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미룬다), 예전 재판을 받을 때 찾았던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 있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베네딕도 규칙을 보면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은 나중에 주님 앞에 힘 바쳐야 함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 책임을 다하도록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이어지는 경우는 이와 반대로 자기 책임을 망각한 불충실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에게 언젠가 분명히 있을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보고 배워야 할 윗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해 있으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의 폐해가 얼마나 심대한지 작금의 나라 상태를 보면 누구나 체감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모범이 바로 제1독서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복음 선포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바오로의 고백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셨습니다...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총의 선물같은 사명을 깨달아 전력투구한 바오로야 말로 지도자들의 모범입니다. 10월 내내 저를 행복하게 한 산을 볼 때마다, 산앞에 설 때 마다 떠오르는 고백시입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바 물론 ‘주님’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늘 주님앞에서, 주님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시편33,1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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