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작은 희망을 열정으로 완성을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루카 13,18-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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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28 | 조회수6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은 희망을 열정으로 완성을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루카 13,18-21) 영국 출신의 찰리 채플린은 젊은 시절 철공소에서 일했다. 어느 날 사장은 그에게 빵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는 빵과 포도주 한 병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보게, 이게 웬 건가?’라고 사장이 묻자 그가 답했다. “사장님께서 일이 끝난 다음에 언제나 포도주를 드시면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포도주가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뒤 사장은 그의 월급을 올려 주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태도로 그를 대했단다. 그는 남들이 무심중 지나친 것에 대해 대단히 성실했던 거다. 이렇게 작은 일에 충실했기에, 그는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시작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데 결과는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비록 그 시작이 작더라도, 그 자체가 지닌 역동성 때문에 커다란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그 나라의 비결은 작은 겨자씨와 같다. 그것을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가지에 깃들였다.” 그분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크게 부풀었다.” 믿음은 처음부터 풍성한 나무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여정을 보면, 그들의 믿음은 그야말로 겨자씨나 누룩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작고 보잘것없는 믿음의 씨앗을 성령의 도움으로 성장시키시어,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고, 부풀어 오른 큰 빵을 만들어 주셨다. 교회가 그렇듯이 인간관계도 작은 일에서 신뢰를 지키면서 상대방의 숨겨진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작은 기대들을 채워 주는 희생적 사랑에서 성장한다. 지금 자신이 부부간에, 자식 간에, 형제간에 힘든 관계에 있다면, ‘겨자씨와 누룩’을 헛된 곳에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볼 일이다. 겨자씨만 한 작은 씨앗도 그 안에는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이 숨어 있다. 그러니 꾸준하게 잘 가꾸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를 선물할 게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내 것이라고만 여긴다면 심지 않은 겨자씨에 불과한 삶이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부풀은 누룩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작은 씨앗 안에서 큰 나무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이웃과 나누는 사랑도 외적인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려운 시절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내적인 교감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그 작은 겨자씨와 누룩에다 비유하신다. 지금은 비록 작은 하찮은 씨앗이지만, 하늘의 새들이 깃들만큼 크게 자랄 것이고, 보잘것없는 누룩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서 온통 부풀어 오르는 그 가능성이 바로 하늘 나라의 출발이니까. 사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 나라가 지금 우리와 함께 있고, 또 자라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도달할 때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그 희망은 외적으로 얻어질 게다.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빠지게 한다. 그 완성이 언제 올지 안달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작용하고 있으며, 결국 그렇게 꼭 대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니까.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하루가 되도록 하자.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희망으로 시작되고 작은 열정으로 완성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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