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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루카 13, 31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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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30 조회수14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13,33)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산이 높은 곳에는 항상 강이 뒤따라가듯 흘러갑니다. 산과 강은 어쩌면 떼래야 뗄 수 없는 한 쌍의 어우러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80년대 초반 광주 화정동 피정 센타에서 생활할 때, 가끔 비 오는 날 구례 가는 버스를 타고 압록강(=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섬진강의 다른 이름)을 따라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현경이란 분은 「산과 강」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산을 돌아 흐르는 강과 강에 제 모습을 비추는 산 항상 변함없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오래 세월 흐르고 또 흘러 왔지만 강은 한 번도 같은 물을 담아 본 적 없었고 늘 말없이 그 강을 지켜봤던 산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새 움을 틔워 왔었지 산과 강은 변함없는 게 아니야 부지런히 제 할 일 다 하고 있었던 거야.』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멈추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을 보면서 저도 때론 강을 닮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말없이 흐르는 강도, 때론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시도를 겪기도 하겠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부지런히 제 할 일 다 하고 있을 뿐이듯이 우리 역시도 그렇게 산과 강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삶이 마치 산과 강처럼 세상의 여러 변덕과 요구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셨던 것이 아닐까, 라고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곧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쫒아내고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13,32)라는 말씀에서 자신에게 닥칠 고난과 죽음을 예감하였지만, 그 시간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은 사람을 살리는 일, 구원하는 일을 다만 묵묵히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 한다.” (13,31)라는 소식을 듣고도 의연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요? 하느님의 뜻을 깨어 살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 볼 수 있는 순간입니다. 할 일과 갈 길은 어쩌면 산과 강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듯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역시도 같습니다. 분명 자신에게 곧 닥칠 위기의 순간을 앞두고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치려고 다짐하듯이 당신이 가야 할 길 십자가의 길, 즉 어리석음의 길, 바보의 길을 막고 돌리려는 시도와 위협 속에서도 그저 예수님은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아셨기에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누구도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 방영되었던 「나의 나라」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서 있으면 땅이지만, 걸으면 길이 된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예수님은 멈추지 않고, 걸으셨기에 스스로 길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13,33)라는 말씀에서 비장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어제 이미 그 길을 걸어오셨듯이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실 것입니다. 어제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설사 어렵고 죽음이 기다릴지라도 매일 쉼 없이 걸어서 마침내 골고타에 이르기까지 그 길을 묵묵히 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보다 마음 깊이에 간직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서 ‘박노해’ 시인의 「굽이 돌아가는 길」을 잠시 들어 봅시다. 『올곧게 뻗은 나무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아름답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 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 시를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주님, 당신처럼 저희 또한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야 할 길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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