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연옥을 믿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복음: 마티오 5,1-12ㄴ
LORENZETTI, Pietro 작,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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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연옥은 무척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성인들은 지옥의 고통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만큼 큰 자비의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연옥이 하느님의 자비임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만약 연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도 하느님 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보다 크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례자 요한보다 완전해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서 느꼈습니다. 다만 양말이 뚫려 엄지발가락이 나왔을 뿐인데 잔칫상이 마치 지옥과 같았습니다. 창피해서 맛있는 거 먹는 거보다는 집에 빨리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지옥에 가지는 않더라도 양말을 기울 시간을 주어야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분이실 것입니다. 만약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핑계를 대든지 잔칫상에 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연옥이 없으면 감히 성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졌더라도 연옥에 대한 교리가 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르틴 루터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지옥이 두려워’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해성사를 하고 보속을 해도, 죄는 여전히 짓고 보속은 고통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이때 바오로 사도의, 행위보다는 믿음이라는 말씀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행위를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일단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죄가 용서받았다고 믿어야 해서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천국에 이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처음에는 성경에서 제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믿음의 정도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정도면 충분할까요? 우리 믿음은 하느님 자녀, 곧 그리스도처럼 되었다는 믿음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죄를 짓는 법이 있으셨을까요?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행위 또한 완전하셨습니다. 이렇게 연옥을 생각하지 않으면 완전해야만 해서 그 완전의 정도를 낮추기 일쑤입니다. 전에 전교 1등을 하는 고3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전국 1등을 하라고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성적표를 받았는데 학교에서도 1등이 아닙니다. 아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성적표를 위조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알까 봐 자기가 죽느니 어머니를 죽이는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적표는 실천입니다. 실천이 믿음의 정도를 나타내줍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실천이 나오지 않으면 착각입니다. 그러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의고사와 같은 성적표가 필요 없다고 말할 것이고 또한 그 목표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전국 1등을 못 하더라도 사회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공부만 하면 나머지는 다른 것으로 보충하면 될 것임을 압니다. 그렇게 자비로운 여지를 주는 부모 앞에서 아이는 목표를 낮추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실천과 믿음의 균형을 맞추며 나아갈 것입니다. 한때 조류 인플루엔자나 신종플루, 코로나 등의 전염성이 강한 병이 발생했을 때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혹은 외국에서 들어올 때 체온계 등으로 일일이 검사하여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이 들어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였습니다. 죄는 확실히 전염성이 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불량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보고 듣는 것들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가 매우 건전하게 크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그런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게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그러나 병이 들었으면 치료될 수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주어야지, 무작정 완전하지 않으면 끝이라는 식이라면 정말 사랑도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연옥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연옥을 목적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노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연옥이라는 곳을 만들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진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