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같게 되려는 것이 용서와 사랑 / 연중 제31주일 나해(마르 12,28ㄱㄷ-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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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1-02 | 조회수7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같게 되려는 것이 용서와 사랑 / 연중 제31주일 나해(마르 12,28ㄱㄷ-34) 사람마다 자신의 신조(信條)를 지니고 있다. 신조란 일종의 인생 목표인 신념이다. 한번은 공자의 애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중의 한 사람인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평생 지켜야 할 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서(恕)이다.” 한자의 용서할 ’서’(恕) 자를 풀이하면, ‘마음(心)이 서로 같다(如).’ 라는 뜻이다. 이는 그 유명한 위령공21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말로는 ‘용서’일 게다. 내 마음과 상대방인 너의 마음이 서로 같게 만드는 것이 서(恕)이다. 이는 이웃 사랑하는 이는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그것과 하나가 되는 ‘같게’된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이는 이웃이 바라는 것을 실천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의 마음, 곧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거다. 하느님 마음을 닮고 하느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는 게 우리 ‘신앙인의 신조’일 게다. ‘그때에 어떤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와, “계명 중 첫째는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고, 둘째는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그분은 한 분이시고 그 밖에는 없다.’ 하시니,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더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를 못하였다.‘ 사실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고 믿는 신앙인이다. 그렇지만 마치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마시는 공기처럼, 날마다 받는 햇살처럼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더욱 내 곁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지만, 때로는 너무 가까이 계셔서 그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시작과 마침을 하는 삶을 고백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고 가르치신다. 그러기에 때로는 나도 나를 모른다고 느껴지는 마음 흔들릴 때는, 언제든지 하느님께 도움 청해야만 할 게다.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려면 정신을 헛된 것에 쓰지 않아야 하고, 삶에 지쳐 쓰러지더라도 온 힘 다잡아서 일어날 줄도 알아야만 하리라. 이것이 그분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로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인 사랑을 삶의 첫째 신조로 두는 이다. 이 사랑은 내가 나의 중심이 아닌, ’네가 나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나를 향해 가는 게 아닌, 너와 같게 되려는 것이다. 이처럼 같게 되려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순서를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을 첫째로 두고, 다음을 그 첫째이신 그분께서 사랑하는 모든 이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의 첫째 계명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마음이나 생각에만 머무는 게 아닌, 실천으로 드러나기에. 그래서 내가 만나는 이웃들, 특히 신앙생활에서 만나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물론, 가족과 직장 동료,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웃들이 다 하나같이 나의 사랑 실천 대상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나의 중심은 이웃보다 내가 아닌, 그 이웃이 나 안에 중심 되는 것이다. 나와 이웃이 같게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용서요 사랑이다. 모두와 같게 되려는 삶을 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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