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게 하소서. (신명 6,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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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11-02 | 조회수4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4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일]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게 하소서.
독서(신명 6,2-6)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2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평생토록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그분의 모든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오래 살 것이다. =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정결한 짐승이(깨끗한 새 계약의 피, 대속의 모형 번제물로 바쳐지는 그 향내를 맡으시고~
(창세8,21) 21 주님(야훼)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 그리고 하늘이 대신 활을 맞고 죽으시겠다는 무지개 계약(무지개-보우, 활), 그 구원의 계약, 맹세, 약속을 세우신다. (창세9,12-17참조)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하느님의 뜻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 육의 만족을 위한 신앙을 살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교육으로 이집트에 종살이를 400년 동안 시키시고, 탈출시키신 후, 광야에서 먹을 물이 없어 죽게 되었을 때, 나무 하나의 희생으로 생명수(단물)를 주신다. 곧 십자나무(하늘의 대속)를 진리의 말씀(물)으로 구원을 위한 규정과 법규로 다시 주신 것이다.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쓴)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나무 하나가 쓴물에 빠져 죽는 그 희생으로 단물이 된 것이다. 무지개 계약이나, 나무 하나의 희생, 그 규정과 법규, 모두 하늘의 대속(代贖)을 뜻한다. 그리고 그 하늘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을 열(10)로 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그러니까 십계명의 하나, 그 하나는 하늘의 대속, 그 사랑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열 가지 모두가 하늘(그리스도)의 대속, 그 이타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을 열 가지로 곧 인간들의 계명인 도덕과 윤리로 지킨다면 하늘(그리스도)의 대속인 무지개 계약, 나무 하나의 규정과 법규, 그 진리의 사랑과 관계가 없게 되는 것이다. (티토1,14참조) 그 이타의 사랑을 진리로 믿어 받는 구원이다.
(로마9,31-32)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32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찾지 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 이웃이 하느님의 사랑(용서, 생명)을 받도록 하늘의 대속인 구원의 계약, 규정과 법규, 그 십자가의 복음, 말씀을 전해 주는 것,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큰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는 것이다. 가톨릭성가31번(입당) ♬가난한 형제 찾아 복된 말씀 전하면~주사랑 깨닫고 하느님을 뵈오리~♪
3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이것을 듣고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가 잘되고 크게 번성할 것이다.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우리가 오래오래 살, 영원한 하느님 나라다.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 ‘한 분이신 하느님’ 당연한 말씀을 왜?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인 무지개 계약과 나무 하나의 희생, 그 이타의 사랑의 계명을 구원의 진리로 믿고, 삶을 의탁하여 사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하늘의 진리를 믿지 않고, 어리석음으로 보기에 그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핍박한다, 그래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람들의 미움과 비난,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형제분이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열심 했던 종교 행위’. 이 부분에 대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 없다’고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디있냐? 당신이 그런 사람이니까 다 그렇게 보면서 성경을 왜곡시킨다, 가만히 있으라’. 고 하며 성경 말씀도 복음도 아닌 성모님 관한 책을 근거로 댓글을 주셨는데~ 그 부분이 더 안타깝고 슬펐다. 여러분은 어떻세요? 정말 내 뜻, 내 소원, 그 육적 욕망을 위한 기복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는가 말입니다. 제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주일미사 안가면, 고해성사 안보면, 전례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화를 내실까봐 두려워서 하는 신앙인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내가 그랬었다. 그래서 쓴 묵상 글들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평화, 쉼이 없는 그 삶이 얼마나 힘든 고통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고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또한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에페2,8~) 그러나 그 믿음의 신앙인을 볼 수 없다고 하신다.
(루가18,7-8)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헛된 신앙으로 헛된 믿음을 갖고 있다는 말씀이다. 곧 이 세상에는 진짜 하느님이 아닌, 인간들이 만들어 낸 가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의 하느님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도~“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을 강조 하신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뜻(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뜻, 생각대로 하느님을 만들어 놓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4,39)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2티모4,3)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갈라1,6-10) 6 그리스도의 은총(대속)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말씀이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사제의 묵상글로 마무리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형식적으로 봉헌하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에 대하여 여러 차례 경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물을 봉헌하기만 하면 하느님께 바쳐야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바라지 않으시고, 신의와 하느님을 옳게 아는 것을 더 바라셨습니다(호세 6,6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읽으면, 제물을 봉헌하고 전례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증해 주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이웃에 대한 미움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그 어떤 계명보다 강조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웃 사랑을 강조한 것은, 모든 이가 하느님 백성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이웃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멘.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사람의 뜻을 들어 준다는 가짜 하느님과 사람의 비위를 맞춘 그 다른 복음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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