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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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04 | 조회수109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 루카 14,12-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유다인들의 전통 안에서 식사(食事)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서로 특별한 친교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식사 자리에 고귀한 사람,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을 초대하여 그와 가까워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깜짝 놀랄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신선한 사고방식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give and take”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지다 못해 그렇게 하는걸 당연한 일로 여기지요. ‘내가 너에게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주어야 한다’며 조금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함께 해봐야 이득 될 것이 없어보이는 사람과는 아예 관계 자체를 맺으려고 들지 않기도 합니다. 내가 투자한 노력과 시간의 양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관계도 식사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재물과 물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인간관계 마저도 ‘거래’로 전락해버린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give and take”는 누구라도 실행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런 삶의 방식은 우리 구원에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못하지요. 하느님 나라에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보답이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누고 베푸는 모든 것은 원래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소유이니 보답을 받아도 내가 아니라 그분께서 받으셔야 하는 겁니다. ‘집사’인 우리가 아무리 성대한 잔치를 베푼다고 한들 자기 것으로 베푼게 아니기에 다른 이들 앞에서 생색낼 이유도, 자기 행동에 대한 보상을 당연한 듯 하느님께 요구할 권리도 없지요. 우리에게는 그저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실히 일한 것 자체가 영광이 되고 보상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을 충실하게 수행한 착하고 성실한 종에게 더 충만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보답이라는 말도, 대가라는 말도 다 우리 인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도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으시고 부족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찮은 선행에 대가를 바라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데에만 전념합시다. 하느님께서 세상 종말의 순간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실 구원의 잔치를 희망하며...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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