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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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05 | 조회수111 | 추천수5 | 반대(1) 신고 |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루카 14,15-24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어떤 사람이 기쁨에 겨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 기울이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 하나도 이렇게나 행복한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초대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마도 그런 생각으로 내뱉은 말일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 비유는 어떤 사람이 베푼 큰 잔치에 먼저 초대되었던 이들이 다른 일에 눈이 멀어 참석을 거부하자, 결국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빗댄 비유이지요.
그 비유를 보면 초대를 거절하는 이들의 답변이 각양각색입니다. 여기서 밭은 재산, 겨릿소는 일, 장가는 사랑과 가족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보다 당장 재물을 더 얻는데에, 더 많은 일을 하여 실적을 올리는데에, 자기 가족과 욕망을 챙기는데에 더 열을 올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지요. 각각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첫째 사람은 밭을 둘러보겠다고 합니다. 밭은 재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는 ‘땅’입니다. 즉, 밭을 샀다는 건 자기가 마음 편히 머무를 땅이 생겼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광야에서 헤맨 끝에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삶이 안정되자, 이내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야훼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잊어버리고 풍요로운 소출을 얻게 해주는 이교신 바알에게 눈을 돌리지요. ‘배부르고 등 따수우니’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겁니다. 주인에게 처음 초대받았던 순간의 기쁨과 설렘을 잊어버린 모습입니다.
둘째 사람은 겨릿소 다섯쌍을 부려보러 가겠다고 합니다. 겨릿소 다섯 쌍이면 크고 힘 센 소 열 마리입니다. 성경에서 ‘열’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지요. 농사와 건축 등 삶의 기반을 닦는데에 큰 도움을 줄 훌륭한 도구를 든든하게 갖추고 나니 두려울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제 힘과 능력을 믿고 삶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 여기며 잔뜩 교만해져버리니, 자기를 귀한 잔치에 불러준 임금에게 감사하던 마음은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셋째 사람은 장가를 들어서 잔치에 못간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혼인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가리키지요. 즉 그는 하느님과 맺은 믿음과 순명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기 욕심과 고집을 기준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은 겁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아무리 하느님이라도 내 삶에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새로운 형태의 우상숭배에 빠진 모습입니다.
이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참여함을 행복과 영광으로 여긴다는 그 사람에게 그 마음이 진정 간절한지, 세상의 여러 유혹과 욕심 앞에서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있겠는지를 물으시는 듯 합니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삶에서는 그분의 뜻이 아닌 나의 뜻을 먼저 추구하려 드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할 겁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번번히 거절당하시고 나중으로 밀려나시면서도 다시 또 다시 우리에게 구원의 초대장을 보내십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꺼뜨리지 않도록 쓸 데 없는 욕망을 자제하며 하느님의 뜻에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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