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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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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06 조회수143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11/6) :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 제1독서 : 필리 2,12-18

* 복음 : 루카 14, 25-33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오늘의 강론>

오늘날,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은 하나”라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것을 무엇일까요? 마치 지난 시대의 유물처럼, 케케묵은 말이 되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단지 그들에 대한 존경과 권위가 떨어진 것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신종 권위가 지배하게 된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의 권위’의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게 된 것일까요? 혹 자기 자신이나 재물이나 이윤추구가 차지한 까닭이 아닐까요?

가치관이 변해버린 이 시대에 우리는 대체 어떤 이를 스승을 모시고 싶어 할까요?

또한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참된 진리를 배우고자는 할까요?

오히려 이익을 추구하는 방편을 배우고자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대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앞세워’ 배우고자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그 세 가지 조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3개의 동사입니다. 따라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의 행동실천이 따릅니다.

<첫째 동사>는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미워하다’(μισει) 동사입니다. 너무도 매정하게 들리는 ‘미워하다’는 이 동사의 뜻은 제대로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에, ‘미워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누구보다 뒤에 사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다’는 말은 ‘앞세워 사랑하다 혹은 선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결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분께서 부모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금지하거나 적대시 하실 리 만무합니다.

결국, 세상의 일보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 중에 더 궁극적인 가치를 앞세우고 더 우위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곧 부모형제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앞세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한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는 말씀입니다.

<둘째 동사>는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지다’(βασταξω)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서, 지다’라는 동사는 억지로 마지못해 어깨에 지는 짐처럼, 압박감에 눌려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짊진 자 다 나에게로 오라’고 하신 분께서 짊을 덜어주시기는커녕 더 무겁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다’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끌어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어머니가 아기를 품듯, ‘소중하게 자의로 스스로 품는 것’을 말합니다. 곧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와 함께 오라는 말씀이요, 십자가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동사>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버리다’(αποτασσεται)라는 동사입니다.

‘버리다’의 의미는 단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자신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부인하다’ 입니다. 곧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것이요,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으로 ‘바치다.’, ‘가납하다.’를 뜻합니다. 쓸 데 없거나 무익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본래의 주님께 ‘향하여’ 봉헌하는 것이요, 가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오니 주님,

제자인 저희가 당신보다 그 무엇도 앞세우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 무엇보다 앞서, 항상 당신을 앞세우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주님!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 자신을 따르기보다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제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당신이 바라는 것과 당신을 바라게 하시고,

제가 믿는 것보다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더 이상은 당신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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