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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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1-07 | 조회수285 | 추천수4 | 반대(0) |
현대인들과 고대인들은 ‘역사(歷史)’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역사는 사건(Fact)에 대한 기록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역사를 배울 때, 연도와 사건을 주로 배웠습니다. 조선의 건국, 한글 창제, 임진왜란, 국권피탈과 같은 사건을 연도와 함께 외웠습니다. 그 뒤로는 숫자를 먼저 외우곤 했습니다. 삼일절 만세, 팔일오 광복, 사삼 제주 항쟁, 육이오 전쟁, 사일구 혁명, 오일륙 군사 쿠데타, 오일팔 민주화 운동, 육십 시민 항쟁, 육이구 선언과 같은 사건과 날짜를 외우곤 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역사는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교회의 전례도 사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2월 25)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 일요일)을 축으로 전례가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4주 동안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할 전에 40일 동안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회개하는 사순시기를 지냅니다. 고대인들에게 어떤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fact)보다 그 사건에 포함된 진실(truth)이 중요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실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였는가“의 육하원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진술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말하며, 진실이란 사건의 의미와 그 파급 효과를 말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역사 기록은 정치나 종교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했고, 따라서 과거에 대한 편견 없는 공정한 평가란 그들의 역사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 기록은 성경의 다른 기록들처럼 저자의 신학 사상과 메시지를 선포하고 전달하는데 이용됩니다. 구약성서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기 위해 이민족들의 손에 넘깁니다. 어느 정도 벌이 충족되거나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백성은 다시 평화를 찾습니다. 지도자가 죽으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빠져들어 똑같은 역사를 반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우리 신앙인들은 현실의 짧은 삶이 아니라, 천상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작은 것들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기도입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를 자주 하면 기도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차를 타면 간단하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도 안전 운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둘째, 선행입니다. ‘선행을 베푸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보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는 선행도 좋지만, 보답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는 선행을 하느님께서는 더 좋아하십니다. 셋째, 성사 생활입니다.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말씀의 양식과 성체를 함께 받게 됩니다. 혼인성사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커다란 축복입니다. 내 마음에 쌓인 죄와 분노, 미움과 시기들은 고백성사를 통해서 버려야 합니다. 기도와 선행 그리고 성사 생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나 못 하므로 하느님께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속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만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나의 신앙도 키워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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