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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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08 | 조회수8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루카 16,1-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비유는 우리를 많이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가뜩이나 ‘공정’을 중요시하는데, 등장인물인 집사가 보여주는 불의하고 얄팍한 꼼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집사가 주인으로부터 ‘칭찬’까지 받았다고 하니 더더욱 황당해집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이란 당연히 ‘하느님’을 상징할텐데,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원하는 걸 얻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권하시는 꼴이 되버리니, ‘이게 정말 맞나’싶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각 구절 속에 숨은 의미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먼저 주인은 자신이 고용한 집사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서 주인과 집사의 관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해당하지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는 하느님께서 잘 다스리라고 맡겨주신 그분의 다른 피조물들을 관리하는 ‘집사’일 뿐입니다. 그 집사가 관리를 맡은 재산을 주인과 그분 뜻을 위해 쓴다면 ‘선용’하는 것이고, 자기 뜻을 이루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막 쓴다면 ‘오용’ 혹은 ‘남용’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집사가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집사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주인의 재산을 선용하지 않고 오남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뜻에 맞게 잘 쓰라고 주신 재물과 능력과 권한을 오남용한다면 심판의 순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광을 누릴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주인이 자기 재산을 오남용한 것으로도 모자라, 본인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로 피해를 끼친 집사를 고소하기는 커녕,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하는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모두 선해야만 참된 선행이라는 경직된 논리에 붙잡힌 사람은 이 구절에서 배신감을 넘어 허무함까지 느낄 겁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희생과 불이익까지 감수하는 나는 ‘바보’인가?’라는 생각에 마음 속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지요.
그런 분들은 하느님과 나 사이의 관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나의 지향이 늘 천사처럼 순수하기만 했던가요? 그 과정에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과정과 결과까지 늘 완벽하기만 했던가요? 아닐 겁니다. 각자 저마다 고유한 부르심을 받고 살아가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내딛는 첫 걸음은 아주 허술하고 불완전하며 때때로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엉뚱한 곳을 헤매기도 하지요.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왜 올바른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느냐고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더라도, 부족함과 약함으로 인해 중간에 엉뚱한 곳을 헤매더라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섭리 안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정화되고 성숙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집사의 불의한 행동을 즉시 단죄하지 않고 심지어 어떤 부분은 잘했다며 칭찬까지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지요.
세상과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굽은 자를 가지고도 직선을 그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족함과 약함,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짓게 되는 죄악에서조차 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결국엔 당신께서 바라시는 좋은 방향으로 되돌려 놓으시는 겁니다. 이 때 중요한 건 하느님께서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시기 위해 하신 칭찬을 ‘구원’으로 오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하고 죄많은 나를 통해서 당신 뜻을 이루시도록 그분께 철저히 순명하고 따르는 회개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그리고 치열한 노력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비유 속 주인이 집사를 칭찬하는 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초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현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그분과 사랑으로 일치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신앙과 삶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지 잘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할 의지가 있는지요?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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