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위로와 평화를 얻는 성전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1109](요한 2,1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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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1-08 | 조회수4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위로와 평화를 얻는 성전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1109](요한 2,13-22) 11월 9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건물이었다. 이 성전은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천 년 동안이나 역대 교황님이 거주하던 교회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이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내는 건, 각 지역교회가 로마의 모(母)교회와 일치됨을 드러내는 것일 게다. 이 성전의 맞은편에 거지차림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상이 있다. 왜 하필이면 거기에 성인의 동상이 있을까? 그 사연은 이렇다. 로마 출신 인노첸시오 3세 교황님(Innocentius III)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설립에 대해 승인을 앞두고는 다소 망설였단다. 그런 그가 꿈에 당시 교황청이던 그 성전이 허물어져 가는 걸 안타깝게 보았단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당황한 교황님 앞에 보잘것없는 거지 청년이 자신의 두 어깨로 그 무너져가는 성전을 온 힘을 다해 떠받치고 있었다나. 그리하여 이 꿈 덕택에 지금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탄생하게 되었단다. 성인은 과연 교황님 꿈 모습 그대로 어려움에 놓인 교회를 다시 일으켰다. 그 힘은 하느님에 대한 신심 깊은 청빈과 단순함, 겸손의 덕택이었을 게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했다. “이를 짓는 기간이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거요?”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것을 믿게 되었다.’ 사실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으뜸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우리는 성전의 의미를 묵상하게 된다. 유다인들에게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다. 그러나 매우 크게 짓고 화려하게 꾸며도 거기에 하느님 마음이 없으면 참된 성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성전이라신다. 이는 그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실현되었다. 그분과 우리 사이의 참된 중개자가 되셨기에.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신다. 다양한 신심행사보다 미사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자. 예수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기에. 일반적으로 예수님 시대의 성전이라면 두 가지를 뜻하였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다. 하느님의 거처라는 거다. 어쩜 우리도 그분 성전이다. 그분 부르심 받은 우리는 얼마나 귀하고 거룩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만 할게다. 귀한 존재가 된 내 몸을 가꾸도록 맑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인 오늘, 성전을 허물라라는 예수님 말씀에 유다인들은 의아해하지만, 그분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다. 이처럼 예수님의 몸은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성전이다. 하느님을 더욱 가깝게 만나 뵈면서 그분 말씀을 듣는 은총과 생명이 넘치는 곳이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때, 위로의 힘과 평화를 얻는 곳이다. 그래서 성체를 모신 성전에서 자신도 성전임을 깨달아 그분과 함께 편안히 머물도록 하자. 나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분께 찬미 드리면서, 그분 뜻을 받들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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