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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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1-10 | 조회수245 | 추천수4 | 반대(0) |
미국과 한국의 집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에는 ‘현관(玄關)’이 있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옵니다. 현관에는 신발장이 있고, 우산 거치대가 있고, 구둣주걱이 있습니다. 현관은 ‘정화(淨化)’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현관을 지나면서 모두 털어버리면 좋겠습니다. 현관을 통해서 가정으로 돌아오면 그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성당에도 현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수(聖水)’입니다. 달라스 성당에는 성전 입구에 세례대가 있습니다. 세례대에는 늘 일정량의 물이 흐르게 하였습니다. 성수를 찍거나, 세례대에 손을 적시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겁니다. 가톨릭 교리 중에 ‘연옥’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연옥은 일종의 현관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성인들의 통공과 우리의 기도가 함께 하면 연옥 영혼들은 정화될 겁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초대받을 겁니다. 제가 있는 사제관은 복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계단에 ‘난관(欄干)이 있습니다. 난간은 공간을 구분하는 장치로, 실내와 실외, 안전과 위험, 자유와 제한 사이의 경계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간은 인간의 본질적인 경계 설정 욕구를 반영합니다. 난간은 어떻게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제한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난간을 넘어서거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욕구를 어떻게 경험할까요? 아담에게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난간을 뛰어넘었습니다. 난간은 보호자나 사회적 안전망과 같은 역할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어려움에서 안전을 찾을 때 '난간'과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많은 보이지 않는 난간이 있으며, 우리는 항상 어떤 경계 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난간은 규칙과 질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규범과 법적 ‘난간’을 세워 둡니다. 이러한 난간이 보호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원로와 감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원로는 현관과 같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감독은 난간과 같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원로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교우들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독은 세상 속에 있는 교우들이 하느님께 갈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원로와 감독의 역할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다른 하나는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이렇습니다.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어야 합니다.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은 이렇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합니다.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원로와 감독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난하고 평가하기보다는 먼저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기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인연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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