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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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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2 조회수86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 루카 17,7-10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주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힘들게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종에게 잠시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어서 밥을 차리라고 닥달하는 모습이, 심지어 본인이 밥을 먹는 동안 그 옆을 딱 지키고 서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도와주는 ‘시중’을 들라고까지 요구하는 모습이, 종의 입장은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폭군’의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비유 속 종처럼 이리 저리 치이고 바빴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나를 닥달하시고 휘두르셔서가 아니라, 내가 내 욕심을 더 채우고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과욕을 부렸기 때문이었지요.

 

오늘 복음 속 비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종과 주인의 관계를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금새 알아볼 수 있지요. 진정으로 고생하고 수고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쉬거나 자는 동안에도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돌보시고 섭리하시느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고 당신 백성인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데, 그분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요?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하고 약한 ‘종’인 주제에, 제 분수도 모르고 ‘주인’이신 하느님께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하며 그분이 쉬시지도 못하게 들들 볶고 있는건 아닌지요? 그런 모습이야말로 ‘주객전도’를 넘어 주종이 뒤집어진 ‘막장’이 아닐까요?

 

생각이 짧은 우리는 ‘종’이라는 표현에 꽂혀서 욱하지만,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우리를 ‘종’에 비유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려주시려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니 나의 재물 능력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한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것도, 그분께 대가를 요구할 권리도 없지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저는 마땅히 당신 뜻에 따라 해야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 뜻을 충실하게 따르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인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섬기고 봉사한다고 해서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위가 높고 큰 재물과 권력을 가졌기에 마땅히 누려할 ‘권리’처럼 여기지요. 하지만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우리 하느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밖에 안되는 우리의 사랑과 선행을 크게 기뻐하시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고마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느님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되찾은 양의 비유’이지요. 그 비유에 등장하는 참된 목자는 잃었던 양을 되찾은 것을 크게 기뻐하며 동시에 되찾은 그 양에게 고마워하는 존재입니다. 살아있어줘서, 무사히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이지요. 그런 하느님의 눈물겨운 사랑을 깊이 체험한 이들은 그분의 ‘종’이 되는 것을,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님의 일꾼으로 뽑혔다는 사실에, 부족하고 약한 내가 그분을 위해 뭔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할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모범적인 신앙인의 마음자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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