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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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유의 은혜를 받았지만 왜 그들은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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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3 조회수90 추천수1 반대(2) 신고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핵심 메시지 가운데 그 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소재의 대상은 '감사'입니다. 흔히 사람의 마음을 화장실에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가기 전과 후를 나누어서 마음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감사라는 측면이 가장 큰 묵상거리가 되지만 소분해서 다시 들어가면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묵상거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매일미사에 나오는 복음묵상을 한번 묵상을 하면서 읽어봤습니다. 이 묵상을 보면서 이와 같은 사람을 저는 딱 영세를 받고 1년 됐을 때 이런 결과를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한 게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게 있는데 마치 "내가 이렇게 하느님을 위해 봉사를 하니 이게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거래를 하듯이 해 마침 자기가 원하는 게 이루어졌을 때 바로 언제 봉사를 했는가 할 정도로 그만 봉사를 하지 않고 또 세상에 자기가 이루고 싶은 그 일에 빠져 그만 성당을 다니지 않고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매달릴 때는 자기의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힘에 의지를 했기 때문에 자기가 봉사를 하며 하느님 일을 했을 겁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내심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결과가 이루어진 후에는 생각을 이상한 방향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땐 하느님의 은총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입니다. 물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 언급한 사람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낸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만약 모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한다면 그나마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할 확률도 높겠지만 무신론자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결론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설령 극단적인 생각으로 자기의 노력으로 그런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해도 정말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이루어지게 된 힘의 원천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보다 그 이전에 자신이 뭔가 부족해 아쉬워 하느님께 매달리려고 했던 그 모습을 보며 정확하게는 어떤 힘으로 이루어졌는가는 모른다고 해도 그래도 그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설령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었다고 한들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막말로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겠지만 마음만 먹으시면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도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피조물이 무슨 항변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마치 옹기장이의 마음입니다. 참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나 감사의 마음은 더더욱 안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 인간의 마음이란 게 얼마나 옹졸하고 치졸한지 그 단면을 한번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느님이 아니라서 망정이지 제가 만약 하느님 같았으면 당연히 마음 심보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냥 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애을 먹였을 수도 있습니다. 미워서 미운 게 아니라 아쉬울 때 아쉬운 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는 그것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 때문에 거짓 사랑을 했다는 그 사실이 고약하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저 같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치졸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머지 아홉명은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배은망덕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왜 내가 그때 그렇게 했을까 하고 수많은 자책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은 묵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세상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는 오점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런 오점도 없이 영원한 하느님나라에서 구원을 얻고 그게 영원이 지속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그 오점이 더 큰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영생이 아니고 다시 유한한 삶을 얻는다고 하면 이보다는 덜 아쉬울 것입니다. 이런 걸 묵상하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잘 제시해 주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독서를 다시 한번 찬찬히 가슴에 되새겨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좋은 날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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