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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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13 | 조회수75 | 추천수3 | 반대(1) 신고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루카 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살면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참 자주 합니다. 그런데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경우는 참으로 제한적이지요. 나에게 은총이나 축복이 주어지면 감사합니다. 내 몸이 아픈 데 없이 건강하고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쥐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내가 원하는 좋은 것을 받은 뒤에야 그 대가로 드리는 감사는 참된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품어야 할 참된 감사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만 하지요.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때에는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되었음에, 그래서 그분과 마음으로 더 강하게 일치되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졌을 때에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음에 대해, 이제 남은 건 희망으로 바닥을 차고 올라가는 것 뿐임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음 속에 참된 감사를 품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입니다.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주님으로부터 치유의 은총을 입었는데, 그 가운데에 한 사람만이 그것도 유다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고 누리는 작은 은총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민감한 영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 감수성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성찰했기에 지금 자신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해진 자기 몸을 사제에게 보여 공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은총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건 그 ‘때’를 놓치면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가 감사를 드렸고 그 결과 육체의 치유라는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치유의 은총을 베푸신 분께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면, 다른 아홉 명의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치유의 은총을 입은 걸 당연하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자신들이 여러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해가며 주님을 찾아갔기에 그런 은총을 받은 게 당연하다고 여겼겠지요. 받은 은총을 당연하게 여기니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올 리가 없었고, 얼른 사제를 찾아가 병이 나았음을 확인받는 일이, 그래서 자기가 나병에 걸려 잃었던 모든 걸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 생각을 행동에 옮깁니다. 자기가 은총을 받았다는 결과 자체에 얽매여 정작 그 은총을 베푸신 분께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 결과 구세주를 만나고도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감사는 상대방이 나에게 베풀어 준 호의를 내가 안다는 증거입니다.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를 향한 축복과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모든 게 다 당신 덕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하느님께는 영광과 기쁨이 되고, 나에게는 더 큰 은총을 가져다주는 ‘마중물’이 됩니다. 그러니 감사는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즉시, 진심을 담고 최선을 다해 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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