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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믿음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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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5 조회수10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늘 깨어 준비하며 새로 시작하는 삶>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름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

 

옛 어른의 지혜를 나눕니다.

“당장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라.”<다산>

진리와 사랑에 대한 청정욕(淸淨慾)은 언제든 좋습니다. 어제 기도에 둘을 추가했습니다.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길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인생자체가 당신의 진리가 되게 하소서.’ 이런 거룩한 욕망은 언제든 주님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군자는 도를 얻으면 즐거워하고, 소인은 욕망을 얻으면 즐거워한다.”<예기>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논어에 나오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믿는 자들은 진리를 깨달아 알 때 기뻐합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새롭습니다. 무려 여기서 27년전 ‘하루’ 란 시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높이 깨어있던 불암산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떠오르는 해를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친다”<1997.12.2.>

 

이런 거룩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하루의 삶을 희구하며 한결같은 산을 닮고자 하는 여기 정주수도자들입니다. 더 하나의 ‘소망’이란 시도 나누고 싶습니다.

 

“차가운 날씨

 청정해서 좋다

 맑고 깨끗하다

 살짝 덮인 회색 구름 사이에서

 쏟아지는 햇빛

 온유해서 좋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청정(淸淨)과 온유(溫柔)를 겸할수 있다면 좋겠다”<1997,12,2>

 

어제 87세 고령의 수녀님과 나눈 덕담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어려운 내적처지에도 한결같이 하루하루 아름답게 가을 단풍처럼 사시는 분입니다. 아름다운 만추의 단풍을 배경한 제 사진을 보내 드렸습니다.

 

“와 신부님, 멋지십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계절이 서둘러 떠나보내기가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을 단풍이 흡사 수녀님 노년의 아름다움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만추의 단풍처럼 아름다운 가을인생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하겠는지요! 14년전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얻은 ‘삶의 여정’에 대한 큰 깨달음입니다. 우리 삶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또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시점에 와 있겠는가에 대한 확인 점검입니다. 저로 하면 오후 4:30분, 계절로 하면 초겨울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나 많이 인용하여 나눴는지 모릅니다. 

 

이런 확인 점검이 오직 한번뿐인 선물인생을 깨어 하루하루 날마다 낭비함이 없이 거품이나 허영, 환상이 걷힌 맑고 투명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종말교훈이 더욱 이런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사람이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전개 상황이 심히 우려됩니다. 진리를 까맣게 잊고 욕망 충족의 삶을 살다가 물과 불로 멸망한 경우입니다. 물과 불 다음은 무엇일지 정말 깨어 종말론적 무욕의 초연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과거에 연연하여 집착하여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 지금 여기에서 집착에서 벗어나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의 지혜로운 종말론적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더욱 우리를 깨어 살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외관상 똑같은 환경이었지만 내적 삶의 태도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아마도 깨어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천국의 내적 삶을 살았던 자는 구원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자는 구원에서 탈락됨을 봅니다. 새삼 장소가 아닌 내적 삶의 자세가 구원의 관건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재1독서 요한 2서는 참 짧고 오늘로서 끝나지만 종말론적 삶을 살려는 자들에게는 좋은 도움이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리가 사랑이요 사랑이 진리입니다. 비상한 삶이 아니라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는 말도 있듯이 서로 사랑할 때 진리와 사랑이 하나되는 삶이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2요한3).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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