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2 주간 토요일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로마의 휴일? |1| | |||
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1-15 | 조회수165 | 추천수6 | 반대(0) |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초기 인류는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삶을 이어갔습니다. 태양, 불, 물 등의 자연 에너지를 통해 생존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런 원시 에너지 사용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였지만, 인류 발전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에너지 사용이 업그레이드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8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석탄과 석유의 대규모 사용은 인류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화석 연료는 공업화와 도시화를 촉진했고, 이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환경 오염과 에너지 자원 고갈이라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 등장한 핵에너지는 전력을 생산하는 강력한 원천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원자력의 위험성과 윤리적 고민을 동반했으며,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날 태양열, 풍력, 수력 등 재생 에너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가 에너지를 바라보는 철학과 윤리적 태도를 재정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원천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한테서 왔습니다. 성경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시며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빛은 에너지의 근원이자, 창조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모든 에너지는 신이 창조한 세상의 일부로, 인간이 받은 선물이자 자원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은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는 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을 다스리라"라는 사명을 받고 창조 세계의 청지기 역할을 맡았습니다. 따라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도 책임감과 절제, 지혜를 요구받습니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는 청지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신학적 관점에서 이는 창조의 돌봄과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부유한 국가들이 과도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 빈곤한 국가들은 최소한의 에너지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배치되며, 에너지 자원도 이웃을 위한 나눔과 배려를 통해 관리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전합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새 창조를 향한 책임 있는 준비로 볼 수 있습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이는 생태계의 회복에 참여하는 실천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협력하는 사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종종 ‘불’로 상징되며, 이는 하느님의 능력과 힘을 의미합니다.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연관 지을 수 있으며, 하느님의 능력이 창조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결국 에너지를 관리하고 사용하는 방식은 신앙인으로서 창조의 청지기 역할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에너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에너지입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에너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많이 배웠던 율법 학자도,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던 사제도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알아도, 제사를 지내도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없으면 강도당한 이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던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모임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난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을 베풀면 향기가 만리를 간다고 합니다. 2024년의 달력도 이제 1장 남았습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으로 남은 1장의 달력을 가득 채우면 좋겠습니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