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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개안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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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8 조회수103 추천수9 반대(0) 신고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

 나의 길을 비추는 빛이오이다.”(시편119,105)

 

날마다 등불에 불을 켜는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어린왕자의 점등인點燈人을 이해합니다. 어린왕자는 예전 초등학교 6학년 제자들과 나눴을 때 참 좋아했던 책이었습니다.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그 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어린왕자는 점등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 아저씨, 왜 지금 마악 가로등을 껐어?”

“명령이다. 안녕.”

“점등인이 대답했다.

“명령이란 무어야?”

“가로등을 끄라는 명령이다. 안녕.”

“그런데 왜 다시 가로등을 켰어?”

“명령이라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데.”

하고 어린왕자가 말했다.

“알아듣고 어쩌고 할 것이 못돼. 명령이야, 안녕.”-

 

명령에 복종하듯 쓰는 날마다 쓰는 강론입니다. 이유가 필요없습니다. 진리이신 주님 명령에 복종할뿐입니다. 얼마전 새롭게 읽은 한용운의 시 ‘복종’이 생각납니다. 순명, 순종 말마디보다 요즘 부쩍 좋아진 복종이란 말마디입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라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진리이신 주님의 명령에 기쁘게 복종하는 마음으로 쓰는 강론입니다. 오늘 복음은 소복음서라할 만큼 내용도, 상징도 풍부합니다. 이 복음을 대할 때는 늘 새롭습니다. 강론 제목은 언제나 제가 좋아하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날로 눈이 열려가는 눈밝은 개안의 여정인 우리의 영적 삶이라는 것입니다. 점차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중에 날로 자비롭고 지혜롭고 자유로워지는 인생입니다. 개안하면 떠오르는 행복기도 한 대목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오늘 복음은 한폭의 살아있는 아름다운 그림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어떤 무명의 눈먼 이’가 상징하는 바, 바로 눈이 가려 방향을 잡지 못한 가련한 인간 존재를, 또 길가에 앉아서 길이신 주님을 갈망하는 인간 존재를 상징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간은 도인道人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복된 운명의 도인들일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닫혀있지만 영적 갈망에 마음의 귀는 활짝 열려 있는 눈먼 걸인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부르짖습니다. 잠자코 있으리는 꾸짖음에 아랑곳 없이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그야말로 영혼의 절규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마 이렇게 부르짖지 않았다면 주님은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간절히 찾을 때 응답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어지는 주님과의 문답은 불가의 선문답을, 또 사막교부를 찾았던 제자와의 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진실하고 간절하면 말도 글도 행동도 짧고 순수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단도직입적 질문에, 

“주님, 제가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제대로 잘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문득 법정의 스승이었던 효봉선사가 그의 스승 석두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된 경우가 생각납니다. 정처없이 떠돌던 효봉이 석두스님 소식을 듣고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을 찾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몇 걸음에 왔는가?”

스님의 물음에

“이렇게 왔습니다.” 대답하며 큰 방을 한 바퀴돌고 앉습니다.

“10년 공부한 수좌보다 낫다.”-

 

감탄하며 바로 계를 주고 원명이라 법명을 내립니다. 진리를 찾는 열망이 간절했기에 이런 동작으로 답했고 이에 화답한 석두 큰 스님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일화입니다. 예수님의 눈먼 걸인에 대한 즉각적인 구원의 응답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은총의 말씀에 전제되는바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영적 믿음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다시 보게된 눈먼 걸인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눈먼 걸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라나섰고 이를 본 군중도 고무되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니 이들의 믿음도 한층 고양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만나 눈이 열린 그는 이제 더이상 눈멀지도 않았고, 더 이상 걸인도 아니고, 더 이상 길위에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길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만나 길의 방향을 잡았고 주님과 함께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삶의 방향, 삶의 목표,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신 주님과 함께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한 인생입니다. 말그대로 개안의 여정이요 그의 마음의 눈은 날로 밝아지고 맑아졌을 것이며 영적시야는 날로 넓어지고 깊어졌을 것입니다.

 

과연 개안의 여정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물음입니다. 오늘 제1독서 묵시록에서 주님께서 에페소 교회에 주는 말씀이 흡사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듯 우리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개안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시작하여라.”

 

초발심을 회복하여 주님 사랑을 다시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개안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은총이 열정에 불을 붙여 우리 모두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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