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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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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8 조회수71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루카 18,35-43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 날 이 세상에는 ‘눈 뜬 장님’들이 참 많습니다. 육체적인 시력을 잃지는 않았지만, 정신적 영적 신앙적인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기에, 세상 것들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눈이 멀어 버렸기에, 겉으로 보기에 멀쩡히 두 눈을 뜨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전체를 두루 훑어봐야 하는데 자기가 보고 싶은 아주 작은 부분만 집중해서, 확대해가며 바라봅니다. 어떤 현상과 관련된 전후사정이나 배경 등 큰 맥락 안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자기가 지닌 편협하고 왜곡된 주관만이 진리라고 착각하며 아주 진하게 칠해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때로는 그 상황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가워진 머리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오해와 편견으로 자기 마음 속 분노를 점점 더 키워서는 상황을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기 눈 속에 커다란 들보를 꽂은 채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경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연유로 인해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게 되었지만, 세상과 삶을 왜곡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앞이 안보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들에게 구걸하는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 속에 언젠가는 이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은 시력을 잃은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그가 예수님께 바란 일도 아니거니와 예수님께서 그에게 해주고자 하신 일도 아니지요. 그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 안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떴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룬 것입니다.

 

큰 목소리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하던 그를 당신 앞으로 부르시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우리는 이 질문의 내용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혹은 ‘너는 나를 통해 어떤 소망을 이루고 싶으냐?’ 이런 식으로 묻지 않으신 것은 그에게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주체가 당신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즉 믿음과 희망의 주도권을 예수님 당신이 쥐고 계시니, 우리가 그분께 기도 중에 무엇을 청할 때에는 그 주도권을 인정하고 고려해가며 청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내가 원한다고, 나에게 필요하다고 막 청할 게 아니라,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나를 지켜보시며 내가 당신께서 준비하신 가장 좋은 길로 가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과 뜻을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나서 청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헤아렸는지, 그 소경은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부분은 우리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의도와 뉘앙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뜻이 모호해진 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그리스어 원문의 뜻에 가깝게 직역하면 이런 영어 문장에 가깝지요. “let me see.” 내가 보고 싶다가 아니라 ‘나를 보게 하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겠다는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대로 그분의 시각으로 그분 뜻에 따라 보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만이 참된 진리이며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길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가 마음 속에 지녀야 할 참된 믿음이지요.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구원은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삶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 안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게 구원이지요. 내 마음가짐이 바뀌고 시각이 바뀌면 자연스레 내 삶이 바뀝니다. 그리고 내 삶이 바뀌면 그 변화가 주변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세상까지 바뀌지요. 그러니 우리도 기도 중에 주님께 간절히 청해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보게 하십시오. 세상이 주는 즐거움보다 당신 뜻을 먼저 바라보게 하십시오. 그래서 저에게 진정으로 유익하고 꼭 필요한 것을 바라게 하십시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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