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려와야 만나는 용서(容恕) (루카19,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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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11-18 | 조회수37 | 추천수2 | 반대(1) 신고 |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내려와야 만나는 용서(容恕)
복음(루카19,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복음환호송(1요한4,10)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네.” 로 알린다. 곧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나가고 계신 것이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 로마(세상)의 힘, 법(法)을 이용하여 부자(富者)가 된 세리(稅吏)들의 장이다. 얼마나 악착을 부렸으면 세리장(稅吏長)이 됐을까. 보든 이들도, 자신도 인정하는 죄인이다. 그래서 늘 죄책감(罪責感)에 시달려 살았던 것이다. 엄청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경험(經驗)이 있었다면 알 것이다. 자신의 처지(處地)를 알아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그때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 군중(群衆)에 가려 볼수 없었다? 이 표현은 많은 사람(군중)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소원(所願), 뜻을 이루어줄 분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 길로 열심을 다해 따랐기에, 세관장(稅關長)은 자신의 사정, 죄를 없애주실 대속의 속죄(贖罪) 제물(祭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만날 수)가 없었음을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로, 속죄 제물로 죽으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진리의 포도나무와 반대인 구원을 주지 못하는 율법(律法)을 뜻한다. 그러니까 세관장 또한 율법으로 열심을 부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 표현이 ‘키가 작은이가 예수님을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 그게 ‘아니지’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얼른 내려와야 한다. 곧 자신의 죄를 없애주실 대속(代贖)의 구원자를 만나려면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무에서 얼른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열심, 그 의로움은 용서, 구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려오면, 부자 세관장, 세리-죄인)이 아닌, 자케오(완성을 얻다)가 된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 로마, 곧 세상의 힘, 법으로 완성을 이루려했던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예수님을 용서의 그리스도로 기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군중은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삶을 어리석음으로 보기에~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 네 곱절로, 직역하면 ‘넷으로~’ 곧 땅(4)의 구원을 위해 갚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세상)의 것을 위해 살았던 그 땅의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땅에서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 사랑이며 구원의 완성이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가져 오라는 하늘(3)의 제물을 하나(1)로 완전하게 가져오지 않고, 사람(아담)의 본능대로 둘(2)로 나누어 반(半)으로 잘라 바쳤기에 죽음이 왔다.(창세15,9-12참조) - 말씀을 선과 악, 그 둘의 법으로 드린 것이다.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죽음)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죽음)들 사이로 *지나갔다. = 횃불, 곧 불이신 하느님께서 쪼개놓은 제물, 그 죽음들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죽어야 할 아브람을 살리시고~
(창세15,18)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땅은 약속의 땅으로 하늘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아브람을 살리신, 그 구원의 계약으로 세관장이 살아났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이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홀로 죽음들 사이로 들어가시어 죽음들을 살리시겠다는 대속의 계약, 그 구원, 용서의 말씀을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군중)들이 여전히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법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구원이신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어버려 하늘의 용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죽음들 사이를 다시 지나가시게, 곧 대신 죽게 하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구원의 길로 십자가를 지러 오신 것이다. 잃은 아들을 찾아서....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히브9,11)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하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땅의 것에서 일어나 완성된 하늘의 것을 향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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