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 19,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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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1-18 | 조회수10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1/19) :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제1독서 : 묵시 3,1-6. 14-22 * 복음 : 루카 19, 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은 자캐오 이야기로,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나서는 거대한 역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앞 장면>(1-4절)이 자캐오가 예수님을 찾는 이야기라면, <뒤 장면>(5-10절)은 예수님이 자캐오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앞 장면>에서, 자캐오는 ‘키 작은 세관장이고 부자’였지만 동포의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고, 매국노의 혐오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말은 그가 외면적으로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처럼 초라했고 ‘작은 자’였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래서 깊은 자괴심과 열등감으로 황폐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보려고 앞질러 달려가 무화과나무 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뒤 장면>에서 자캐오는 ‘아브라함의 자손’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사람의 아들’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무화과나무 위에 걸린 죄인 세리 자캐오와 나무 아래 있는 예수님 사이에서 드러납니다. 마치 그것은 십자가 아래 있던 백인대장의 고백처럼,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지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치 이곳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이를 부르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이 당신께서 자캐오를 불러내신 약속 장소였습니다.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장소요, 자캐오가 구원을 얻는 장소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장소였습니다. 그분은 그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그의 아픈 마음도 이미 다 헤아려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그를 약속 장소로 이끄시고, 당신이 그 약속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내가 당신을 찾았다면, 그것은 당신께서 저를 먼저 찾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
그렇습니다. 이제 나무 위에서 얼른 내려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는 까닭입니다. 하늘에서 이미 인간이 되어 내려오시고, 먼저 나무 위에 달리셨던 그분이 이제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캐오처럼, ‘일어서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하고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19)고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이 자동적이거나 법칙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에 대한 순명으로 자동적이고 법칙적으로 구원이 온다.’는 당시의 신학을 뛰어넘어, 자캐오와 같이 실존의 변화라는 창조적 행위를 통해서, 구원은 비로소 역동적으로 체험되고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늘, 이러한 역동적인 실존의 변화를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얼른 내려오라”고! 아멘.
*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루카 19,6)
주님! 당신은 숨어있는 저를 훤히 아십니다. 사람들 위에 드러냄으로 숨어 있음을 보시고 당신이 계신 아래로 불러 내리십니다. 주님, 제가 얼른 내려와 엎드리게 하소서. 사람들 아래로 내려가게 하소서. 사람들을 내려다보지 말고 올려다보게 하소서. 아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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