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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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1-20 | 조회수13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1/20)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 제1독서 : 묵시 4,1-11 * 복음 : 루카 19, 11-28
11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 <오늘의 강론> 겨울의 길목입니다. 바퀴를 달고 달아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고,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다 놓은 가을의 노고, 가을의 땀방울이 쓸쓸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꽃도 떨어지고 벌거숭이로 알몸이 되면, 그 나무가 속이 꽉 찬 나무인지 속 텅 빈 나무인지가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 초겨울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있던 가식과 허영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인 “미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요 은총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과 소명이 주어집니다. 선물인 ‘미나’는 주인이 ‘벌이를 하라고 맡긴 것’(루카 19,13 참조)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오면 그 소명을 실현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하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시 돌아옴’은 재림과 종말을 암시해줍니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마치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사실 결과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핵심은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결심을 많이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실을 내는 나무’가 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곧 결실을 통해서 나무의 본질을 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어떤 나무가 결실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열매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착한 종’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악한 종’은 주인에 대해서 “냉혹한 분이어서 가져다놓지 않는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는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루카 19,23)으로 여겼기에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낳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맺는 관계성’에 있습니다. 곧 주인에 대한 믿음과 순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어야 하고, 우리의 행실을 ‘순명’으로 채워나가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선물’을 악용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정과 보존에만 머물지 말고, 선으로 활용하고 충실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순명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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