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전(聖傳)의 가르침을 따라 극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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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4-11-21 | 조회수9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전(聖傳)의 가르침을 따라 극기. 우리가 자제와 극기로 부단히 우리의 자신의 내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중요한 수덕지침이고 예수님 친히 그러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사도들 또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고귀한 표양과 함께 갑진 교훈의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부정의 희생적 생활은 크리스챤의 제일 중요한 실천 의무로 세기를 통하여 항상 강력하게 뒷받침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극기적인 수업이나 금욕적인 교회의 가르침이 가끔 정면으로 반박당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였지만 성교회는 이러한 사실이 대두될 때마다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완덕으로 나아감에 있어 자제가 직극히 중요한 덕성임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성교회가 극기주의를 옹호하고 발전시켜오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거의 모든 수도회의 수도 규칙에 이 자기 부정의 희생을 반영시킨 사실입니다. 현대에 와서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성교회 내.외부에서 금욕생활과 극기 수련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이들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시대적 배경과 발전의 이름아래 극기주의를 가볍게 여기고 희생과 자제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자제와 금욕은 은둔적이고 삶의 기쁨을 빼앗으며 생활 의욕을 떨어뜨리고 비정상적이며 부자연스럽고 반 시대적이라는 주장을 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얼마든지 덕을 닦을 수 있다고 하면서 엉뚱하게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나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예를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 두 성인이 얼마나 영웅적인 금욕생활을 하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근본가르침은 상당히 옹호되어 극기의 실천을 주장해 왔고 이단의 교설을 가차 없이 폐지시켰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일반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이 거의 사라진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므로 옛날처럼 몸에 채찍을 가한다든지 혹은 심한 단식을 한다든지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초인적 고행은 너무 지나치고 해롭기도 하겠지만 금기자체나 금욕자체를 경시하거나 배척함은 부당한 일입니다. 성교회는 신자의 개인적 자유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하며 거의 불가침(不可侵)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은 자기의 환경과 성격, 소질에 맞는 적당한 방법으로 자기부정의 생활을 하며 정화의 길에 정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성이나 본성 자체는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을 억제하고 내적 생활을 정리해 나가는 방법이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례운동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성사나 자주 받고 축일의 예절이나 장엄하게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제적 고행 같은 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신심행위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교회의 전례사를 조금만 깊이 살펴본다면 그러한 견해가 근본적으로 그릇된 것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일년을 통틀어도 몇번 안되는 소재와 대재 지키기도 매우 힘들어하고 고생스럽게 여기지만, 전례적 생활이 오늘날보다 다양하고 활발했던 초대 교회때나 중세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엄격한 대.소재를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교회의 엄한 엄재는 자기를 끊고 금욕과 극기하고, 희생하며,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는 요구이고 권고이며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친히 모범을 보이신 "자기를 끊으라" 는 말씀의 참뜻을 명념(銘念)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합니다. 성인들의 표양은 극기의 생활 그 자체였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신앙의 선조들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도 영웅적인 생활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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