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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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1-23 | 조회수162 | 추천수6 | 반대(0) |
지난 11월 4일입니다. 신부님들과 저녁 식사 하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교회 이야기, 사제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부님 한 분이 제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신부님은 트럼프와 해리스 중에 누가 당선될 것 같습니까? 신부님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습니까?” 어찌 보면 단순한 질문이고, 그저 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질문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 1시간가량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트럼프’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신부님은 표정이 바뀌면서 ‘왜 트럼프입니까?’라며 물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고,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의 미국과 북한, 북한과 한국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의 폭이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때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3번 만났습니다. 싱가포르, 판문점, 하노이에서 만났습니다. 마지막에 결렬되었지만, 한반도의 평화가 시작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때는 그런 전쟁이 없었습니다. 저의 의견을 듣고, 신부님은 트럼프가 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이면서 세계의 지도자이기에 도덕적인 결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말을 함부로 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은 성직자가 아니고, 대통령은 윤리 선생님도 아닌데 도덕적인 완벽함이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대의와 명분도 중요하지만, 형세 판단과 실리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자존심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고, 대통령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도 이야기했습니다. 남한산성은 조선의 왕 인조와 그 왕을 보필하는 두 명의 신하 김상헌과 최명길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김상헌은 대의와 명분을 내세워서 조선의 왕은 청의 황제에게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최명길은 형세 판단과 실리를 내세워 지금은 청의 황제와 타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세자를 청의 수도로 보내자고 합니다. 세자는 청에서 새로운 나라의 정치와 새로운 나라의 질서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의 왕 인조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면서 병자호란은 끝이 납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그리스도 왕은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권위는 있으셨지만 권위적이지는 않으셨습니다. 힘은 있으셨지만, 그 힘을 남용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실 자격이 충분하셨지만, 오히려 섬기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은 피땀을 흘리면서까지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나병환자, 중풍병자, 소경, 세리와 창녀들과도 함께 하셨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의 힘은 사랑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은 비록 돈과 조직, 엄청난 배경은 없으셨지만, 희생과 봉사 그리고 기도의 힘으로 세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승리하셨고, 그분은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과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에서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배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과 함께 지내면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도 천상의 향기를 갖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도 목적지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전례력으로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올 한 해를 돌아 볼 수는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난 한이, 병든 이, 굶주린 이와 함께한 발자국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고,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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