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루카 21, 5 -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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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11-25 | 조회수3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21,6) 오늘 복음의 성전 파괴를 들으면서, 예전 ‘남인수’ 선생이 불렀던 「황성 옛터」란 노래 가사의 일부분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있노라.』 참으로 인생과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노랫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언급한 예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장식된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었으나 무너질 운명에 놓여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견고함에 도취되어 안으로부터의 허물어짐을 감지하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보시며 예수님은 눈물 흘리셨던 것입니다. (19,41~44참조) 예수님의 눈에는 성도聖都 예루살렘의 폐망이 훤히 보였으며, 그래서 그날을 준비하도록 알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예언한 대로, 70년경에 로마의 황제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무참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전의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21,6) 말았던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것은 로마 제국이지만,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백성들 내부로부터 이미 다 허물어진 예루살렘을 로마 제국이 발로 찼을 뿐이라고 봅니다. 예루살렘 함락은 외부 세력의 힘에 의해서 무너진 것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내부에서부터 이미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붕괴는 바로 그곳에 살고 있던 이들의 거짓과 욕심 그리고 독선과 오만으로 하느님의 회개를 향한 초대의 소리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욕망과 아집이 예루살렘을 함락당하고 붕괴시켰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분명 역사적인 비극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사건이 곧 세상 종말의 표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자칭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21,8)라고 하더라도 속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며,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21,9)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겉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누구보다 먼저 그것, 단지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의 허무한 끝, 폐허를 보셨습니다. 이 세상에 아름답고 웅장하게 만들어진 모든 것, 그것들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다 끝이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언젠가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끝 날이 언제 올지는 아버지와 예수님만이 아시고, 우리가 ‘폐허를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인 우리는 막연히 미래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날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모르지만, 그때와 그날을 깨어 의식하면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지난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배우고 깨달은 점은 사실 가장 무서운 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그 삶의 기초를 물질적인 것 위에 또는 자기 자신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20,17)라고 말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놓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묵2,10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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