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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루카 21, 12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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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26 조회수105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21,12.13)

잘 알려진 것처럼 열심한 힌두교 신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그리스도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특히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간디는 “예수께서 설한 산상수훈은 종교 중의 종교다. 모든 종교의 다이아몬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로 나아가는 길이며, 이 땅에서 하느님 앞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취해야 할 삶의 자세와 태도를 여덟 가지 말씀으로 집약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덟 가지 참 복을 말씀하시면서 ‘의로움(=히브리어로 ‘체다카’로 ‘어떠한 기준에 부합하다’란 뜻)을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 복에서는,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면,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5, 10~11)하고 부언하셨습니다. 결국 박해와 의로움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박해와 의로움은 서로 꼭 들어맞기 때문인데 그 근저는 바로 사랑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박해의 고통이 우리를 순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에서 기인한 사랑이 박해로 인한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이고, 하느님의 힘이며 지혜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의로움 때문에 모욕당하고 박해받으면 행복한 까닭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선포하고 증거했습니다. 이 역설적인 행복의 신비를 이미 욥을 통해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욥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나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분명 불행했지만,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전제하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전이나 현재도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과 신앙의 여정에선 필연적으로 시련과 박해를 만나게 됩니다. 다만 ‘이미’와 ‘아직’의 시차가 있을 뿐, 우리 모두에게는 여러 가지 박해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박해의 때는 지나가게 마련이고, 그 박해의 때가 바로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신앙을 증거할 때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21,12.13) 그 시련의 때가 생명을 위한 인내의 때이기에,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21,19)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누구도 박해의 때가 아니면 자기 신앙의 깊이와 높이를 알 수가 없으며, 이런 환난을 맞아 비로소 신앙인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에 의거해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박해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은총도 아니며, 더욱 순교란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받은 은총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위기危機는 글자 그대로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이며, 위기는 칼의 양날처럼 위험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기회의 순간입니다. 

그러기에 위험의 순간,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0,28)하고 위로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받고”(21,15) 주님을 증거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자신들의 순교를 통해 주님을 증거하신 분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순교 선열들이십니다. 순교는 애덕의 절정이며 신앙고백의 정점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박해와 순교의 때를 맞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때론 회유를 거부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느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5,3~4)라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서에서는 “여러분은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12,7.10) 시련과 환난의 때를 맞아 주어진 모든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견디어 이겨내면 언제가 시련의 때는 마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사라지고 마침내 생명의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영광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와 시련의 때일수록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 달려 나갑시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12,12~13)라는 권고에 힘입어 굳건히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주님,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 앞에 닥친 모든 시련과 환난을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광주 수도원으로 귀원 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잘 적응하고 있으며, 오늘은 형제들과 함께 김장김치를 담갔습니다. 조금 피곤했지만 행복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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