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다해] | |||
---|---|---|---|---|
이전글 | 좋은 친구가 그리운 날 | |||
다음글 | 세상이 뒤집어 지는 날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4-12-29 | 조회수103 | 추천수3 |
반대(0)
![]()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다해] 루카 2,41-52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주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고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참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다짐을 되새기는 날이지요.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나만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짐에 따라 가정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이라는 유대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오해하고 반목하여 나와 아무 상관없는 ‘남’보다 못한 ‘웬수’가 되어버렸지요.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내 ‘식구’이기에,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해도 끝까지 내 편에 서 줄 든든한 버팀목 역시 가족 뿐이기에, 우리는 가정생활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난관들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가정이 지닌 참된 의미와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복음 속에서 나자렛 성가정의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좋은 모범이자 이정표가 되어줄 겁니다.
오늘 복음이 진행되는 상황적 배경은 ‘파스카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이 축제 때가 되면, 전국 각지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감사와 속죄의 예물을 바쳐야했지요. 예수님이 열 두 살 되던 해에 그분의 가족들도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축제가 끝난 뒤 다시 고향인 나자렛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간 일행 중 누구도 예수님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행을 알아서 잘 따라다니고 있으려니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대충 넘어간 것이지요. 가족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 안일함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래서 지금 마음이 어떤지를 관심있게 지켜보며 제대로 대화를 나눠볼 생각은 하지 않고, ‘괜찮겠지’, ‘설마 별 일 있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대하다보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관계가 소원해지고 마는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당장 진지한 얘기 꺼내기가 불편하고 어색하다며 대충 넘어가거나 적당히 무마하려고 들면 서로의 관계가 멀어지고 틀어진 그대로 굳어져버려 돌이킬 수 없게 되지요.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즉시’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모도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즉시 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사흘 밤낮 동안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헤맨 끝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삶의 전부였기에, 예수님이 그들 삶의 중심이었기에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며 그분을 찾아다닌 겁니다. 그런 모습에서 두 분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지요. 아들 예수를 향한 두 분의 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비난하거나 질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 다른 부모였다면 가족들 품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행동함으로써 큰 걱정을 끼친 자식을 호되게 나무랐겠지요. 다시는 그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회초리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또한 자기들이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안위를 걱정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부모가 이런 식으로 자녀들을 존중하며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오해나 갈등이 생기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걱정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부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 때문에 반항하려고 하신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집, 곧 하느님의 품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품 안에 온전히 머무르려면 그분께 대한 믿음이 그리고 그분 뜻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지요. 또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니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간직하며 따름으로써, 나 또한 그분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가정이 성가정으로 점차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세상살이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따로 시간을 내어 ‘외딴 곳’에 머무르며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알게 된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성가정이라는 신앙적 가치는 나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 즉 믿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나와 다른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즉 현실에서 구체화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행하는 ‘하느님 사랑’이 세상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구체적, 실질적으로 실현되며 참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 신경쓰느라 정작 가족들을 등한시하고 그들을 향한 사랑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성가정’이라는 가치는 머리 속에서 ‘뜬 구름’ 같은 관념으로만 머무르다 금새 흩어져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자렛 성가정의 구성원들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가족으로써 해야 할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먼저 아들 예수님은 자기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모를 답답하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분들 뜻에 순종하십니다. 또한 성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말을 ‘어른의 관점’으로 섣불리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하나도 빠짐 없이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그 의도와 뜻을 찬찬히 되새겨 보시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이렇게 대할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이해와 존중,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참된 행복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