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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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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02 조회수90 추천수3 반대(0) 신고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요한 1,19-28).”

1) 여기서 “당신은 누구요?” 라는 질문은 “당신은

무엇이오?” 라는 뜻이고, 무슨 권한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느냐고 묻는 25절의 질문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스도, 엘리야, 그 예언자’는 모두

메시아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마태 17,10-13; 마르 9,11-13),

그 말씀에서 엘리야는 “메시아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예언자”를 뜻하고,

여기서 유대인들이 말한 엘리야는 ‘메시아’를 뜻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유대인들이 “당신은 엘리야인가?”

라고 물었을 때 “아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언자’는 모세가 말한 예언자인데(신명 18,15-19),

유대인들은 ‘그 예언자’를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은, “나는 메시아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예언자다.” 라는 뜻입니다.

2)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라는 말은, “나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세주(메시아)가

아니라, 사람들을 메시아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안내자일 뿐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이 말에는, “메시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라는

말은, “너희는 모르고 있지만, 메시아는 이미 와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는

“나보다 더 높으신 분이신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일

뿐이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보다 훨씬 더 높으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는 말은, “나는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나타내는 말인데,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서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자기를 낮추기만 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무턱대고 낮은 자리로 가서 앉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제대로 알아서 그 자리에 앉는 것이

겸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3) 세례자 요한이 한 말에는, “나도 구원받아야 할

존재일 뿐이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해도, 구원이 완전히

확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들이 연상됩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23).”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5-27).”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이 실격자가 되는 것을,

즉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위대한 선교사도 그것을 두려워할

정도이니,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도 “나는 구원받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

나는 틀림없이 구원받는다.” 라고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교만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 성녀들 가운데에는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큰소리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서,

구원받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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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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