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그리스도 예수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은 환경을 다스리는 연습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08 조회수16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1.8.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4,11-18 마르6,45-52

 

 

그리스도 예수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이사9,1; 입당송)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애제자 사도 요한의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설교가 계속됩니다. 사랑이란 말마디가 어제는 10회, 오늘은 12회 나옵니다. 바로 이 사랑이 가리키는 바, 영원한 참삶의 모범이자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마치 온 누리를 환히 밝히는 태양처럼 온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 사랑의 태양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 정답게 들립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정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 사랑의 통로이자 하느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어제 미사중 영성체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마디가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평화”로 들렸습니다. 놀랍고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성체를 영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평화가 되어 살 수 있게 되었다니 그대로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전 삶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흡사 예수님이 ‘하느님 사랑의 동사(動詞)’처럼 생각됩니다. 어제의 5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사랑의 기적에 이어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이니 이 또한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모두가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는 허영이나 환상을 지닌 어리석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참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흥분한 군중들은 광신적이 되었고 이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할지도 모르니 참 달콤한 악마의 유혹입니다. 정말 광신이나 맹신에는 처방이 없음은 현시국을 보면 압니다. 잘못된 이념이나 종교에 경도되어 광신적이 되어 눈이 멀때는 상식도 양심도 이성도 마비됨을 봅니다. 참사랑과 함께 가는 분별의 지혜로 위기를 탈출해, 참으로 신속히, 기민하게 군중을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은 재촉하여 기적의 현장을 떠나게 하십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의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예수님의 처신입니다. 모두를 떠나 보내신후 즉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홀로 산에 오르십니다. 예수님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와 친교의 관상기도입니다. 그냥 아버지 안에 머물러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전시키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날 믿는 이들에게 정말 절박한 것이 이런 주님 안에 머무르는 관상기도시간입니다. 

 

현대 믿는 이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는 토마스 머튼의 말도 생각납니다. 고독과 연대는 함께 갑니다. 예전 사막교부의 생래적 특징인 침묵과 고독에 대한 사랑도 하느님 사랑 안에, 공동체 중심 안에 깊이 머물려는 관상적 원의 때문이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처럼 믿는 이들의 앞문은 세상에,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이어지는 장면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뭍에서의 깊은 관상 기도중에 열린 사랑의 눈으로 호수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런 맞바람으로 위기에 처한 배안의 제자들을 보신 것입니다. 말그대로 세상 속에서 인생항해중 갖가지 사유로 위기에 처한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시야는 멀리까지 활짝 열려 있었고 즉시 개입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처럼 새벽녘 호수위를 걸으시어 제자들 쪽으로 가셨고 그냥 그들 곁을 지나가려 하십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인 예수님이었고 제자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오늘 복음의 핵심이자, 우리가 인생항해 여정중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Take courage, it is I. do not be afraid)

 

바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는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성심상 바위판에 쓰여져 있습니다. “나다(I AM)”은 바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I AM for you)”로 정의되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어 선장으로 자리잡자 바람은 멎었고, 제자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 모두 넋을 잃었으니 얼마전의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까닭입니다. 망각의 무지가 얼마나 영성생활에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이들의 두려움은 믿음 부족은 물론 사랑 부족에서 연유함을 사도 요한이 잘 밝혀줍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하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신원을 새삼 깊이 깨달았을 것이고, 이 충격적 체험의 기억은 남은 인생 여정중 제자들을 하느님 사랑에 늘 깨어 살게 했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인생 항해 여정중 여러분의 공동체라는 배를 잘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요셉수도 공동체라는 배가 여러 차례 파선의 위기중에도, 1987년3월19일, 개원후 만38년 동안 무사히 세상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음도 순전히 하느님 사랑의 은총임을 깨달으니 바로 제가 그 증인입니다.

 

“생명(사랑)이 나타나셨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네.”(1요한1,2; 영성체송).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