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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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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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12 | 조회수287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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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1/12) : 주님 세례 축일 * 제1독서 : 이사 42, 1-4. 6-7 제2독서 : 사도 10, 34-38 * 루카 3, 15-16, 21-22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예수님의 두 번째 탄생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서의 육적 탄생인 첫 번째 탄일이 그의 어머니께서 성령을 입은 날이라면, 이제 이 두 번째 탄일은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입은 날입니다. 곧 오늘이 예수님의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일인 셈입니다. 우리의 탄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기로 태어났을 때는 부모에게 축복이 내린 것이지만,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부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탄생’이요,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첫 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내 마음에 드는 이,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을 공정하게 펴리라.”(이사 42,1)고 하십니다. <제2독서>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주신 일을 선포합니다(사도 10,38).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들려줍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탄생일인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세례와 함께 새롭게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다시 탄생하는 이 두 번째 탄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세례현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 현장에서는 ‘두 가지’ 신비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습니다. <또 하나>는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루카 3,22)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첫 번째 탄생 때는 주님의 천사만 나타났을 뿐인데, 이제 두 번째 탄생 때는 ‘성령’이 나타나시고, 아버지께서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창조의 장면과 같습니다. 창조 때 하느님의 ‘영’이 물위를 휘돌아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셨던 것과 같이, 이제 똑같은 ‘성령’께서 요르단 강물 위로 내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내린 ‘성령’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 푸른 잎사귀를 물어온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물어오고 은총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곧 죄 사함이 열리고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탄생인 ‘세례’는 ‘새로운 창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가리킵니다(로마 6,4). 그리고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2코린 5,17; 로마 8,9). 곧 ‘성령’ 안에서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살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 놀라운 일인가요! 이는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까닭입니다(1코린 12,13). 그리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의 힘과 성령의 개입으로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디도 3,4-5).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옷 입듯이 입고서(갈라 3,27),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사시게 되셨습니다. 참으로,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합일시키십니다. 그러니 세례 받은 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곧 ‘죽음과 부활’이 새롭게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콜로 2,12)
세례 현장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선포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아버지로부터 선포된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비추어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편에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르는 왕에게 적용한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 선언은 예수님을 ‘왕’으로 축성하시는 장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세우시는 당신 나라의 ‘왕’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이로써, 당신의 아드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었음이 선포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단지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 스스로 이토록 아름다운 구절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당신의 생명을 입었습니다. 성령의 선물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다고 스스로 설명하셨지만, 사실은 세례와 함께 우리 죄인과 같이 된 사건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어 죄인이 되신 사건입니다. 바로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마치 십자가에서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반역자의 하나처럼,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이사 53,11-12) 죄인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저희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바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 ‘생일’이요, ‘의롭게 된 날’입니다. 아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주님! 제가 당신 마음 안에서 탄생되었으니. 당신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마음 안에서 당신의 향기 품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입었으니,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 마음을 입었으니, 당신의 영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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