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세례 축일 다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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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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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12 | 조회수135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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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다해] 루카 3,15-16.21-22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세례성사의 은총은 크게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부족함과 약함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는 경향성인 ‘원죄’에 물들지 않게 보호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 받기 전까지 지은 모든 ‘본죄’를 용서받는 것이지요. 이 점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로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이미 원죄에 물들지 않게 보호 받으셨고, 일생을 당신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사셨기에 죄를 짓지도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특별한 ‘표징’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제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면 그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자 영광입니다. 반면 교황님이 우리 성당에 오셔서 미사를 봉헌하신다면 그건 우리 본당 공동체 모두에게 큰 기쁨이자 영광이 되지요. 그리고 그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 입구에 교황님이 방문하셨다는 표식을 남겨둘 겁니다. 비슷한 이치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세례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특별한 표징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도 없으신 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세례를 받으셨으니,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죄로 물든 내 영혼을 깨끗이 씻고 하느님 뜻에 철저히 순명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한에 물로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 당시 세례는 요르단 강물에 몸을 완전히 담갔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요. 내 몸이 물에 완전히 잠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나, 욕망에 휘둘리며 세상의 뜻을 따라 사는 과정에서 죄의 어둠에 물든 나를 통회하고 정개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죽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물 밖으로 올라옵니다. 나의 뜻과 고집을 물 속에 내려놓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채워 물 밖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개인주의, 시기와 질투를 물 속에 내려놓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채워 물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갉아먹던 탐욕과 집착을 물 속에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순명의 정신을 채워 물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지요. 죄라는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물 속으로 계속 가라앉는 것이 멸망이라면, 나를 옭아매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주님의 손을 잡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부활입니다. 우리는 그 부활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새로운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는 세례가 물로 씻는 ‘예식’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요한이 물로 주던 세례는 우리를 구원받기 위해 준비시킬 뿐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하지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베푸시는 참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겉은 물로 씻을 수 있지만 속은, 즉 내 영혼과 마음은 성령의 불꽃으로만 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광석 속에 있는 불순물을 없애려면 수천도의 불로 태워야 하는 것처럼, 내 마음과 영혼 속에 있는 죄라는 불순물을 없애려면 주님을 향한 사랑의 불꽃을, 그분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의 불꽃을 활활 태워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서도 하느님 자녀답게 살지 못합니다. 세례를 물로만 받고 성령으로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로 이마만 대충 씻어냈을 뿐, 마음 속 탐욕과 집착을 사랑으로 정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신앙생활을 한들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하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시는 모습을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자 마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온 게 아니라, 그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기도하시는 중에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다는 겁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례를 받았다는 ‘결과’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게 아니라, 열심히 기도하며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분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마음 흡족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게 분명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에 따르면, 하느님의 충실한 종들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뜻인 ‘공정’을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공정이란 그분의 사랑을 조건 없이 차별 없이 모두에게 두루 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작고 약한 이들에게 더 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소유와 탐욕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와 나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마지막으로 교회는 성탄시기를 마무리하고 연중시기로 들어갑니다. 연중시기는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적으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내용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묵상하는 시기지요. 그 묵상은 우리의 머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계시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충실히 실천함으로써 그분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가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야 종말의 순간 하느님으로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고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참된 자녀다’라는 영광스러운 칭찬을 듣고 기뻐하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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