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참사람의 영원한 모범 “구원의 영도자, 예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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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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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14 | 조회수176 | 추천수6 |
반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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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4.연중 제1주간 화요일
히브2,5-12 마르1,21ㄴ-28
참사람의 영원한 모범 “구원의 영도자, 예수 그리스도님”
본인보다도 주변인들의 평가가 객관적이고 정확합니다. 참으로 명망있는 여러분들이 모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겸손히 배우는 마음으로 들으며 자신을 비춰보았습니다. 참사람은 누구인가? 참사람이 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평생공부가 참사람되는 공부요 참사람의 영원한 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제 최고의 탐구대상이자 관심사는 인간입니다. 모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들어봅니다.
“생존이다. 평생 생존을 위해 노력한 이다.” “그의 삶에는 일상이 있고 서사가 있다.” “누구와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다.” “기적같은 삶을 살아 왔다.” “어려운 환경중에 살아왔으나 잘 사는 이들에 대한 증오가 없다.” “유능하고 유연하고 경청하는 사람이며 소통에 능하다.” “치밀하고 명민하고 명료하다. 눈빛이 말해준다.” “울컥하다. 짠하다.” “똑똑하고 착하다. 총명하고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강단있는 체력이다. 열정과 간절함이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며 학습능력이,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분이지만 모두가 배워 닮고 싶은 덕목들입니다. 나이가 많아 스승이 아니라 ‘지혜와 노력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스승입니다. 또 어느 분의 이분에 대한 평은 압권입니다.
“개천에서 용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용이 되면 대부분 개천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는 개천을 잊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개천을 바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억강부약 대동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참사람의 모델 예수님에 가깝습니다. 타고난 좋은 품성에 역경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참사람의 영원한 모델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방면에 걸친 주변분들의 객관적 평이니 믿을만 합니다. 김대중과 메르켈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도 위와 같은 장점들입니다. 천재적은 품성에 천재적인 노력입니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에 속할 것입니다. 매사 어느 처지에서도 치열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위대한 정치가들입니다. “애덕의 최고 형태는 정치다” 진리를 입증한 세계적 정치가들입니다. 이런분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희망의 표지이며 공동체의 보물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고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는 말마디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분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디테일에 강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은 ‘크리스천은 다시 사람이 되기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정말 평생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다시 노력하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기가 그토록 힘들고 평생과정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옛 현자의 지혜도 새롭게 마음에 새깁니다.
“새벽은 어른의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새로워진다.”<다산> “평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명심보감>
그래서 진리를 추구했던 옛 사막 수도승들의 공통점은 새벽을 사랑했고, 예수님은 새벽마다 동트기전 외딴곳에서 기도했습니다. 늘 강조하는 것이 정신 건강, 마음 건강, 영혼 건강입니다. 길을, 희망을 잃을 때 영육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죄도 많은 세상이라 병도 많습니다. 궁극의 길이자 희망이신, 궁극의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자 빛이신 주 예수님을 잃었을 때 스며드는 어둠의 세력, 악마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상징하는 바 이런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허약한 사람들인지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으니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는 배격해야겠지만 권위 실종의 시대 참된 권위는 공동생활에 필수입니다. 참된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더러운 영이 하느님의 거룩함 자체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고백합니다. 문득 악(惡)에 대한 처방은 선(善)이 아니라 성(聖), 거룩함이란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하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지체없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꾸짖음에 축출되는 더러운 영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사람들은 모두 놀라 이구동성으로 고백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 구나.”
악마는 진공을 사랑합니다. 삶의 중심이 비어 있을 때 악마가 그 자리에 자리잡게 되고 마음은 악마의 놀이터가 됩니다. 정말 백약이 무효인 것이 이념이나 종교에 경도되어 중용을 잃고 극우나 극좌의 극단에 치우쳤을 때 광신, 맹신의 더러운 영들입니다. 양심도, 이성도, 양식도 마비되어 그 기능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광신이요 맹신으로 이런 이들이 바로 현대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들입니다.
새삼 참 권위의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상식파로 사는 일이,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배우는 일에 항구하는 일이, 참사람이 되는 공부에 얼마나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습니다. 이래야 주님을 닮아 존엄한 품위의 사람으로, 참 권위의 사람이 되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참사람의 모델인 파스카 예수님의 정체가 히브리서를 통해 환히 계시되니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시편 8장을 그리스도화하여 렉시오디비나 한 결과 주옥같은 다음의 진리말씀입니다.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 강조점이 있으니, 모두가 파스카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부단히 그분을 닮아갈 때 참사람으로서 참나의 실현이자 완성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더러운 영들이 악마가 범접하지 못합니다. 온전한 정신, 마음, 영혼으로 살 수 있고 육신도 더불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우리를 고무하며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원의를 더욱 북돋아 줍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있는 한 이런저런 시련과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구원의 영도자인 예수님께서도 고난으로 완전하게 되셨듯이 우리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 안에서 끊임없이, 한결같이 ‘겸손의 계기’로, ‘완전에 이르는 영적성장의 계기’로 삼을 때, 더욱 파스카 예수님을 닮아 참사람, 참나의 실현이요 완성에 도달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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