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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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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16 조회수225 추천수6 반대(0)

한국에서 신부님 두 분이 왔습니다. 두 분 모두 교구청에서 함께 근무했었습니다. 한 분은 선교와 전례 담당 사목을 하였고, 다른 한 분은 직장인 사목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교육 담당 사목을 했습니다. 2002년의 일이니, 어느덧 23년이 지났습니다. 40대 초반의 우리는 열정과 힘이 넘쳤습니다. 교회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서 밤을 새워 토론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서 성격 유형 검사를 받기도 했고, 강화도로 연수를 가기도 했습니다. 한 분은 그 뒤 2013년에 교구청에서 저와 함께 일했습니다. 저는 성소 국장으로 일했고, 신부님은 해외 선교 사목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공자께서는 멀리 벗이 찾아와서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죽마고우가 이 먼 곳까지 찾아주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같이 밤새도록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야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난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같은 동행자, 같은 길을 걷는 도반, 또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를 뜻합니다. 예전처럼 열정과 힘이 넘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미처 갖추지 못했던 덕과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지구장으로 사목하면서 교구장님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작년 123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전시와 내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이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국회가 말을 듣지 않아서 조금 겁을 주려고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비상계엄, 국민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비상계엄을 쉽게 선포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비상계엄은 또 다는 헌법기관인 국회만이 해제를 결의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선포한 지 3시간이 안 되어서 해제되었습니다. 헬기가 국회의 마당에 내렸고, 무장한 군인이 국회에 난입했습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이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비상계엄을 해제하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국회로 돌아온 국회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진압 명령을 거부한 양심적인 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탱크와 총구를 맨몸으로 막아선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의 부당함을 당당하게 알린 언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은 이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회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런 조직은 책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신앙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원칙입니다.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기에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는 희망의 불이 켜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원칙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소중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소중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소중한 것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도 중요합니다. 그것들이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중풍 병자를 들것에 옮겨서 예수님께 데리고 간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명의 이웃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 이웃에 대한 배려를 보시고 비상계엄처럼 사람의 존엄을 침해했던 중풍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중풍이라는 비상계엄을 해제해 주셨습니다. 그 이웃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알았고, 실천하였습니다. 그 이웃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중풍 병자는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이웃들은 중요한 일들이 있었지만 소중한 일을 먼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0251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결심한 것을 끝까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구급차를 타고, 신앙에 목마른 사람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안내하는 따뜻한 이웃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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