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성 안토니오아빠스 기념]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17 조회수109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성 안토니오아빠스 기념] 마르 2,1-12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룹 성경공부를 하는 팀에서 오늘 복음 내용과 관련하여 역할 상황극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부 중에 남편이 환자가 되고 자매님이 남편을 등에 업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그 옆과 뒤에서 같이 들어 주었습니다. 그 상태로 성당 마당과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지하 교리실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들어올 때는 일부러 교리실 문을 잠가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덩치 큰 장정을 창문을 통해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도왔는데도 한참을 낑낑 거리며 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지요. 상황극이 끝난 뒤 각자 느낀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중풍병자가 된 남편은 자신을 등에 업은 아내와 다른 그룹원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그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니 꼭 그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중풍에 걸렸던 성경 속의 병자는 아마 자신이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려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을 것 같다고, 그러니 자신은 아파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없도록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남편을 등에 업었던 자매님은 남편을 등에 업고 낑낑거리고 돌아다니면서, 남편이 등에 지고 있을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이라는, 아빠라는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도 내색 한 번 못하고 그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고 지고있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달았고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남편이 지금 큰 병에 걸려 당장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편을 지고 가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부분은 옆과 뒤에서 도와준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을 낫게만 할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풍병자를 지붕 위에서부터 내려보냈던 친구들도 아마 몸이 힘들지는 않았을거라고, 단지 큰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한스럽고 미안해서 괴로웠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보시고 대뜸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군중 속에 숨어 당신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두번째이자 더 중요한 이유는 중풍병자와 그를 들것에 들고 온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적인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셔서 영적으로도 치유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친구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서 늘 미안하고 죄스러웠던 중풍병자에게도, 그의 고통을 보고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안타깝고 죄스러웠던 친구들에게도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드는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는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과정이었을 뿐이지요.

 

중풍병자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기꺼이 그의 손발이 되어준 네 사람의 소중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돌보는, 그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미안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곱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용서'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오늘 복음을 읽는 우리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한자로 용서(容恕)는 받아들이고 수용함을 뜻하는 용(容)과 헤아려주고 알아줌을 뜻하는 서(恕)의 합성어이지요. 친구의 입장이 되어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친구의 아픔과 슬픔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 그들의 마음 안에 참된 행복의 비결이 숨어있음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참된 용서를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