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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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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17 조회수155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1/17) :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제1독서 : 히브 4, 1-5. 11

* 복음 : 마르 2, 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 <오늘의 강론>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선언되었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사실 앞에, 율법학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합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유다인은 예로부터 죄의 용서를 하느님의 고유 권한으로 여겼습니다(탈출 37,4;이사 43,25;44,22). 그러니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

그리고 그 증거로 중풍병자를 치유하십니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마르 2,11-12)

이는 ‘죄를 용서 받은’ 우리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치유 받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지니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제거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치유 받았음을 보여주는 표지’인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라는 상처를 ‘하느님 백성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우리는 당신의 자녀라는 표시로 영광의 그 상처로 지니고 다닙니다. 야곱이 ‘엉덩이뼈의 상처’를 ‘축복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우리도 그 상처를 축복의 표시로 지니고 다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축복의 표지요, 구원의 표지요, 당신 자녀의 표지’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치유 받았다고 해서, ‘들것’을 버리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들것’에 매여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상처’도 그렇습니다. 치유 받았다고 해서, ‘상처’를 굳이 없앨 필요도, 매여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는 기꺼이 ‘들것’을 들고 다니듯, ‘상처’도 기꺼이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들것’에 아픈 형제들을 태워, 들고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가고 가야 할 일입니다. 마치 내 형제들이 나를 ‘들것’에 태워 예수님께 데려왔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들것’ 위에 인류를 태워 아버지께로 들고 가셨듯이 말입니다. 십자가라는 ‘들것’ 위에서 ‘상처’를 받으시고 바로 그 ‘상처’의 보혈로 우리를 화해시키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들것’입니다. ‘들것’ 위에는 ‘상처’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의 표지, 용서의 표지’입니다. 그러니 진정, ‘상처’에서 흐르는 용서의 피를 마실 때라야,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구원의 표지로 지니게 됩니다. 용서야말로 진정한 치유를 가져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용서하십시오. 용서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느님께서 용서하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이미 치유 받은 것입니다. 아멘.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주님!

들것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들것을 들고 가게 하소서.

들것 위에 당신의 사랑을 들고 다니게 하소서.

당신 십자가에서 사랑을 드러내듯,

저를 일으키신 그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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