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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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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20 조회수11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마르 2,18-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은 단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레위 16, 29-31의 말씀에 따라 구약의 속죄일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했습니다. 즉 자기 죄를 씻고 정결해지기 위해 1년에 한 번 단식하며 재계를 지킨 겁니다. 그리고 열심한 바리사이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일주일에 두 번씩,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을 지키기는 커녕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모습만 보이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단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단식할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과 함께 하는 잔치의 기쁨을 누릴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심으로써 단식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입니다.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하는 속죄와 정화의 단식은 주님의 탄생과 함께 끝났습니다. 이제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걷고 난 후에,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음을 기억하고, 그 큰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분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그 날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깨어 기다리는 단식을,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저 끼니를 거르는 단식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찬 얼굴로 사랑을 실천하는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비단 단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써 누리는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 즉 ‘새 포도주’를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담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헌 부대’ 즉, 편견과 선입견, 고집으로 가득한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내 안에 가득한 ‘나’라는 자아를 비워내지 못하면, 새 포도주를 내 안에 담을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누군가를 내 안에 담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내가 경외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이를 마음에 담고 그를 닮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날마다 조금씩 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마음에 담은 채로,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러지 못합니다. 내 안에 주님을 담지 못하고 나 자신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다른 이 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겁니다. 미움과 원망이라는 끈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든 ‘원수’라는 나무 기둥에 묶어두고서는,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내가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건 다 저 사람 때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지요. 먹음직스러운 새 술을 눈 앞에 두고도 헌 가죽부대를 끌어안은 채 부러움에 군침만 흘리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억지로라도 새 술을 헌 가죽부대에 담아보려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뼈저리게 깨닫고는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을 누리려면 먼저 내가 변화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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