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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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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28 조회수10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마르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식구들 중에 밖에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골칫덩이’가 있으면, 그로 인해 가족 전체에게 근심 걱정이 생기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들었을 땐 그러려니 했지만,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고, 과격한 언사로 기득권층의 심기를 건드리며, 수많은 군중들을 선동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얼토당토 않은 일들을 하고 다니는 걸 보니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붙잡으러 나선 것이지요. 아직 예수님의 정체와 신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인간적인 손익으로 그분을 판단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식을 예수님도 들으셨던 것일까요? 당신 둘레에 앉아있는 군중들을 가르치시던 와중에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라는 보고를 들으시고도 별로 반가운 기색이 없으십니다. 보통의 경우 집을 오래 떠나 있으면 가족들이 그립고 보고 싶은 게 일반적인데, 심지어 그 가족들이 일부러 나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고 하면 버선발로라도 당장 마중 나가는 게 당연할텐데 그러지 않으신 겁니다. 심지어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냐?”고 보고한 이에게 반문하심으로써 마치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아온 가족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십니다. 거기에 더해 당신 주위에 앉은 이들, 당신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냉정하게 말해 ‘남남’인 이들이 당신 가족이라고 하시니, 혈연으로 맺어진 육적인 가족관계를 무시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닙니다. 혈연관계를 뛰어넘는 보다 친밀한 관계를, 인간적인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이상적인 관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지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모두가 그분 안에 속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영적인 가족관계입니다. 이 관계의 특성에 대해 천주교에서는 ‘가톨릭’(Catholic)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는 천편일률이 아니라, 생각과 기준과 가치관이 다른 이들을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명으로 따를 수 있는 참된 분, 즉 하느님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 구성원 모두가 하느님을 참된 아버지로 여기기에, 같은 믿음을 지닌 이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릅니다. 그 호칭은 아직 별로 친하지 않은 어색한 관계에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모신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가 그분께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그들에게 허물과 잘못이 있어도,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나를 아프게 해도 나의 친형제 자매를 대하듯 이해와 용서, 포용과 사랑으로 끌어안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인 것이지요. 이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핏줄보다 강한 유대로 맺어진 가족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효도하는 일이며 하느님은 당신께 효도하는 착한 아들 딸들에게 큰 은총과 복을,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릴 유산으로 물려주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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