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베푼 선행보다 더 보태서 받는 은총 / 연중 제3주간 목요일(마르 4,2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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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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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29 | 조회수96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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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베푼 선행보다 더 보태서 받는 은총 / 연중 제3주간 목요일(마르 4,21-25) 전해 내려오는 우리네 속담에 적선에는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좋은 기운이 감싸고 있기에 악운이 선뜻 다가서지를 못한다는 게다. 그만큼 선행에는 하늘의 힘이 함께한다. 그런데 주변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겸손, 절제, 용기의 덕을 지닌 이들이 참 많다. 하늘이 복을 내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적선 외에는 달리 무슨 방법으로 하늘의 복을 얻겠느냐? 그렇지만 많은 이가 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 길은 이상토록 외면한다. 이처럼 선행의 등불을 켜야만, 언젠가는 앞날이 확 트인다. 이건 내어 놓으라는 거다. 앞 못 보는 이가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 들고 길을 걷고 있다. 그와 마주친 이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 못 보면서 왜 등불은 들고 다니죠?” 그의 답이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이죠.”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다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만고의 진리인 자연의 이치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고 태양에 반사되어 빛난다. 때로는 초승이나 그믐달이 되어 적게 비추지만 반달이나 보름달이면 더 크게 보태서 비춘다. 빛 받은 그만큼 그렇게 어둠을 밝히는 존재임을 알린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빛을 밝혀 본 적이 있는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와 동행해 준 적이 있는지? 선행은 하늘의 힘이 함께한다. 은총 없이는 자선과 같은 선행이 없다. 자선은 삶을 바꾸어 준다. 그런데 복은 받으려하면서도 정작 그 길은 외면한다.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하면, 금방 깨달아지는 단순한 진리인데도. 사실 우리 스스로도 예수님 그분 말씀의 빛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드러내려 한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자기 것인 채 드러냄도, 결국은 그분께서 주인공이게 해야만 하리라. 우리가 드러나게 해 본들 그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으랴! 어둠을 밝히는 달도 초승달처럼 부족하게 보름달처럼 환하게 비출 때도 있잖은가? 믿는 우리는 적게 비춘다고 좌절할 것도, 많이 비춘다고 자만할 일도 결코 아니다. 시간이든 건강이든 명예든 자식이든 꼭 쥐고 있으면 오히려 떠나갈 것인데. 선행도 마찬가지이다. 모르게 베풀어도 언젠가는 꼭 드러나 앞을 밝힌다. 자신을 내어 놓고 나누어야만 더 많이 소유하리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게다. 운명은 언제나 자신의 것이다. 아무도 그 운명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운명에 끌려가기보다 운명을 밀고가야 하리라. 삶의 본질은 기쁨이며 인생의 근본은 즐거움이기에. 이처럼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깨닫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고 선포할 때 더 많은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천천히 베풀며 가도, 인생은 늦지 않다. 아니 준 것 만큼 더 보태어서, 되돌려 받는다. 우리 안에 뿌려진 그분 말씀의 씨앗이 우리 삶에서 싹을 틔우고 하느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자.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의 삶에서 그분 말씀이 늘 머무르게 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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