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오직 믿음으로 가장 낮은 삶을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0131](마태 18,1-5)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1.31) | |||
작성자박윤식
![]() ![]() |
작성일2025-01-30 | 조회수113 | 추천수2 |
반대(0)
![]()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오직 믿음으로 가장 낮은 삶을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0131](마태 18,1-5)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고자 살레시오회 수도회와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34년에 시성되었다. 성인은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기에 농한기를 이용하여 읍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단기 과정을 이수한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정치와 산업화의 중심지인 토리노에서 뒷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만난 수많은 청소년,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1844년 연수원을 졸업한 후 ‘소녀 고아원’의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으나 소년들의 사목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그곳에서 나왔다. 성인께서는 100여 명이 넘는 소년들과 함께 거처도 없이 이동하다가 어머니와 함께 고아들을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면서 주일학교를 시작하고, 고아들과 가출 소년들을 위해 제본소나 인쇄소 등의 여러 기술학교를 세워 견습공들을 양성하였다. 일반교육도 관심을 가져 기숙사의 소년들을 외부 학교에 보냈으며, 불어나는 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기숙사 구내에 학교를 세우는 등 청소년 교육 사업은 점점 확장되어 갔다. 그는 엄격한 규율이나 훈련을 피하고 사랑으로 소년들을 대했고, 각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관찰로 대응하였으며,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여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길러냈다. 이러한 사업이 점차로 확대되자, 성인은 소년들에 대한 교육과 사랑을 설교하러 다니는 한편 유명한 ‘예방 교육법’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그의 제자가 수도 서원을 설립해,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게 하였다. 제자들의 첫 수도 서원으로 기초를 다진 살레시오회는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 수도회’, 곧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립하였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성 요한 보스코 사업의 협력자들로서 기도와 함께 경제적인 도움을 베풀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는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이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러한 어린이 하나라도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한 성인은 ‘돈 보스코’(Don Bosco)로 불리는데, ‘돈(Don)’은 이탈리아어로 ‘사제, 신부’를 뜻한다. 성인은 토리노에서 1888년 1월 31일 선종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시오.” 그의 묘비에는 ‘고아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는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로서 교육자, 청년, 청소년의 수호성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성인의 ‘젊은이 사랑’에 귀 기울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